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익숙함의 양면성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익숙함의 양면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02 16:2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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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익숙함의 양면성

인간의 습성은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낯을 가리는 필자는 더욱 그러하다.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익숙한 장소가 좋고, 익숙한 물건이 좋고, 익숙한 사람이 좋다. 반대로 낯선 물건이나 장소 혹은 낯선 누군가를 만날 때면 습관적으로 경계한다. 그렇다고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해지면 금세 마음을 연다. 대상물이 마음을 사로잡으면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렇듯 하나의 대상물에 양가감정을 가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낯섦에 대한 적응 과정이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하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새로움에 대한 적응의 시간이 지나면 이내 익숙해진다. 인간은 혼자 고립된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나 그의 집에 초대받았다. 결혼 전 그는 마초 같은 친구였다. 그의 집은 온통 술병이 나뒹굴고 담배 냄새로 찌들어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상상하고 들어갔는데, 전혀 아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편안함과 깔끔함이 뚝뚝 묻어났다. 화초도 많이 키우고 있었다. 가족들 역시 온통 꽃이었다. 아내 꽃에 딸 꽃까지. 거칠고 대책 없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남자의 야성은 딸이 태어나면 사라진다’는 그의 말처럼 젊은 날의 방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귀가하는 딸에게 ‘사랑하는 우리 딸, 잘 다녀왔어’라며 포옹으로 반겼다. 내가 알고 있는 친구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의 예전 모습에서 상상 되지 않은 풍경이었다. 딸을 키우다 보니 저절로 달라졌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딸들이 그를 키운 것 같다. 반대로 아들만 둘인 필자로선 결혼 전 상냥하고 부드러웠던 아내가 갈수록 남자로 변한 것이 이해되었다.

내겐 형제보다 자주 보는 친구가 몇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아들만 둘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똑같은 분위기의 집만 봐왔으니, 딸이 주는 정서를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그처럼 우리는 살면서 경험한 것에 익숙해진다. 그 익숙한 습관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간다.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한 사람끼리 가깝게 지내는 이유도 모든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실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발전을 위해선 매너리즘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평등을 외치던 사회 지도층의 위선도 익숙해져 있다. 그런 익숙함은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닐까. 학연, 지연 또는 종교나 이념의 갈등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익숙함이 만든 함정이다. 익숙한 것이 정의로운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 편은 어떤 짓을 하더라도 정당한 것이 되고 내 편이 아니면 어떤 잘한 일이라도 잘못된 일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판이 그 꼴이다.

사람의 마음이 한낱 ‘익숙함’ 때문에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린다고 생각하니 세상 참 허술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닌데 말이다. 감정을 무디게 하는 익숙함에 속아 진실을 막아서는 안 될 일이다. 나라가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견의 익숙함을 버리는 일이다. 내 편의 익숙함보다 타인의 낯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큰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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