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단상-인생 최고의 여행-손자와 런던을 걷다
전원생활의 단상-인생 최고의 여행-손자와 런던을 걷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03 15: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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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
공성원/지자체 농촌 관광 관련 강사·은퇴자 연구소 운영-인생 최고의 여행-손자와 런던을 걷다

여름이 다가오면 우리 집은 서서히 분주해진다. 지리산 형제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집 옆으로 계곡물이 사시사철 흐르며, 주변 섬진강과 함께 회남재 길은 천혜의 풍광을 이뤄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며 자식들 그리고 친지들이 오고 싶은 곳 1순위로 줄을 서곤 한다. 그래서 7월 말 한 주간은 가족, 친지들 누구든지 며칠 와서 휴가를 보내면서 정(精)도 쌓고, 가마솥 소고깃국 끓이고 바비큐(barbecue)해서 한바탕 웃고 지내며 혈연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행사를 매년 해 오고 있어 이를 준비하는 마음도 바빠지기 때문이다.

며느리의 전화가 왔다. 딸 없이 아들만 둔 내게는 언제나 반가운 목소리다. “아버님, 올여름 방학 때 태준(손자)이랑 런던에 다녀오시면 안 될까요?”, “왜 런던이냐?”라고 하니 문명과 역사의 중심인 런던을 꼭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곳 학교의 여름 캠프에 참여도 하고 여행도 하고 오시라는 것이었다. “생각을 해 보자. 지리산에도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숙고해 봐야겠다” 하고 며칠이 지난 후 손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도 영국 가고 싶어 하시고 자기도 가고 싶으니 서로 좋은 것 아니냐”라는 철없는 협상에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큰 일정 계획과 예약은 필자가 하였지만, 세부 일정은 손자가 공부해서 계획을 세우도록 하였다. 나는 그냥 보호자와 조력자, 그림자 역할만 하기로 하였고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에 대한 자세한 계획을 세우도록 하였으며, 여행이란 가기 전에 90%는 공부해서 알아야 하고 10%는 가서 확인하는 것임을 강조 또 강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돌과 교회와 무덤만 보고 오게 될 것이라고.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내렸다. 한국 및 7개국의 승객에 대한 자동입국심사 (E-passport gate)를 도입하여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안내 표시판을 따라 입국을 할 수 있어 대한민국 국력과 여권파워의 대단함을 피부로 느끼고 사진도 찍기도 했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따라오다가 되돌아가는 모습에 손자는 신이 나는 모양이다.

우버(Uber) 택시를 호출하고 목적지를 말하고 지하철 오이스트 카드(Oyster card)를 구입하고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고.. 우려와 달리 마치 할아버지는 영어 잘하는 손자를 앞세우고 여행하는 듯한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는지! 이제 겨우 열 살인 손자의 유창한 영어에 놀랐고 호기심과 궁금증, 질문이 많은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런던브릿지(London bridge), 대영박물관, 하이드(Hyde)공원, 그리니치(Greenwich) 등 많은 역사적 현장과 정원을 둘러보고 이야기하고,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에 가 본 것도 어린 손자에게는 오랫동안 깊은 추억이 될 것이다. 런던타워(London tower)에서 헨리 8세의 이야기, 어떻게 엘리자베스 여왕이 태어나고 세계의 1/4이 대영제국의 땅이었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된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을 것이다.

영국의 교육은 학생 스스로의 지식 습득, 자기 계발을 장려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하며 최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학생들에게 교통수단 대부분은 무료 또는 할인 제공하여 여행을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하고 학생의 관심에 맞는 과정을 선택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 수립 시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대부분 문화시설, 박물관, 갤러리 등은 학생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학교나 대학은 동아리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손자도 대학에서 운영하는 뮤지컬 프로그램(musical program)에 1주간 참여하여 학부모 자격으로 발표회에 참관도 하였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많이 우려하고 걱정하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우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녀들을 데리고 어디든 떠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안타까움 대신, 꿈과 희망과 이상을 심어주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문화, 색다른 경험을 함으로써 모험심과 흥미를 갖게 되고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며 추억을 만들고 익숙하지 않은 음식도 맛보고 다른 삶의 방식도 배우고 가족, 친구들의 관계 정립도 하고…. 이런 엄청난 기회를 주는 체험교육의 중요성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에어비앤비(airbnb)에서 요리도 하고 시장도 가고 손잡고 거리를 다니면서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런던 뒷골목의 어두운 모습도 보여주고 같은 침대에서 평소에 제한된 유튜브(이변우, 대화가 필요해)도 보면서 깔깔 웃고 오늘 본 것을 이야기하고 내일 계획을 세우고 야식으로 컵라면도 먹는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으로 ‘할아버지와 손자랑 단둘이서 함께한 3주간의 런던 여행’은 열 살의 아이에게 무한한 꿈과 도전 의식을 심어주고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기에 내 평생에 이보다 더한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 또 있겠나 싶다. 여행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안부을 묻는 손자의 전화가 기다려지는 할아버지는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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