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06 15:56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
박우담/한국디카시학 주간·시인-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나의 들뜬 문장은
한순간의 열화였을까.
왜 견고하지 못할까.짓다 만 미완성 동공마다
노을 꽃 이글거리네.
아이들
모래성 쌓겠다고
서로 곁눈질하며 심술궂게
상대를 허물기도 했지.
아이의 행동에서
내 유년을 보는 듯했네.
내가 지나온 길에도
부서진 성이 더러 있었지.내 욕망은
낯선 언어를 잡는 일.
아무리 잘 잡고 있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성은 내 인생을 그려보는 일
뻔쩍이는 언어를 모아
나의 욕망을
문장으로 엮고 싶네.
문장이 살거나 죽거나
붉게 물든
내일의 꿈이 있기 때문이지.내 동공은 아직 후끈거리네.

(이루시의 ‘꿈의 포획’)

장마가 주춤하는 사이 거미줄도 시원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먹이를 ‘포획’한다. 잽싸게 얼굴이나 옷에 달라붙어 난처할 때 있다. 생명 유지를 위한 거미의 최적화된 본능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루시 시인의 ‘꿈의 포획’이다. 이루시의 본명은 이희숙이다. 진주 문인협회 상임이사를 거쳐 문단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꿈의 포획’에서 이루시는 / 나의 들뜬 문장은/ 어딘지 모르게 함축성이 없고 해체되는 기분이다. 긴장감이 떨어지고 / 왜 견고하지 못할까./라고 고민하고 있다.

시작 활동은 거미가 집을 지어 먹이를 ‘포획’하는 것과 같이 이곳저곳 방황하면서 영감을 획득한다.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것이다. 모순된 말 같지만 결코 모순된 표현이 아니다. 시인들은 적당한 시어를 찾아 틈만 나면 몸부림친다. 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시어는 ‘꿈’ ‘욕망’ ‘문장’ ‘포획’이다.

‘꿈’은 상징일 것이다. 꿈은 현실과 상반되는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는 시인이 이루고자 하는 꿈, 희망, 욕망을 나타내는 경우다. 꿈을 통해 시인은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고 이상적인 세계를 상상한다. / 내가 지나온 길에도/ 부서진 성이 더러 있었지./ 문학에서 ‘꿈’은 다양한 형태로 서술될 수 있다. 시에서 다양한 의미와 역할로 사용되고 있다.

/ 내 욕망은/ 낯선 언어를 잡는 일/이라 했다. 이루시는 시인으로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낯선 언어’를 찾아 방황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아직 만족스러운 작품을 쓰지 못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밤새 고민하고 지우고 또 지워도 시란 / 아무리 잘 잡고 있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아침이 되면 확 달아난다. 시작 활동은 이처럼 어려운 길임이 틀림없다. 방황한다는 의미는 쓸데없이 헤매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찾아서 모색하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를 말한다.

거미가 집을 지어놓고 먹이를 ‘포획’하는 것처럼 시인마다 시어를 포획하는 개인적인 기법이 있다. 그러면 이루시 시인은 ‘꿈의 포획’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의 최근작 ‘유목민’에 이런 표현이 있다. 시는 ‘상상력과 무의식의 결과일까. 내 문장도 풀을 만나면 잔뿌릴 내릴 거’라고 말한다. 여태까지는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지적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자기 탐닉적 주관성이 완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유목민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해 작품활동을 하기 위한 ‘꿈’을 꾸고 있다.

‘꿈’은 화자의 심리적인 상태, 욕망, 불안, 고통 등을 나타낸다. 화자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서사의 전개를 예고하며, 독자의 상상력과 공감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꿈의 포획’에서 이루시는 좋은 시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루시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