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입추(立秋)와 폭염
진주성-입추(立秋)와 폭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13 15: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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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입추(立秋)와 폭염

입추(立秋)가 지나고 한바탕 태풍이 몰아쳤지만 폭염은 좀체로 잦아들 줄을 모른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시작됐음을 의미하지만 한낮에는 아스팔트를 달구는 열기와 습기로 숨통이 조여들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입추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한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닥치고 있는 이상기후는 입추가 지나도 폭염이 절정을 부리며 절기(節氣)의 순리마저 앗아가는 모양이다.

올해 무더위는 유난할 정도로 심하다. 특히 소승과 같은 어르신들은 하루하루 견디기조차 힘들 정도로 폭염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무더위를 넘은 가마솥 더위에, 폭염도 모자라 살인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지금의 맹위를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처서에도 더위가 가신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밤낮없이 맹위를 떨치는 폭염으로 사람 체온에 육박하는 수은주가 열대야를 불러와 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럼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조상들은 이 절기의 이름을 심사숙고하여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기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하다. 절기라는 것은 일종의 시간의 사이클이다. 무더위 후에 선선한 바람이 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추운 겨울이 오게 마련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고 절기의 이치다. 이렇듯 매번 되풀이되는 단순한 현상이건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건망증은 단 며칠간의 무더위나 추위에도 호들갑을 떤다.

‘농가월령가’ 중 입추를 노래한 ‘7월령’에는 가을을 담고 있다. “칠월이라 맹추(孟秋 초가을)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화성은 서쪽으로 흐르고 미성은 중천이라/늦더위 있다 한들 계절을 속일소냐/빗소리도 가볍고 바람끝도 다르도다.”

아직도 폭염이 극심하지만 절기의 순리에 따라 극악스럽던 매미의 울음소리도 잦아들면서 텃밭에는 가을 정취가 살아나 알알이 결실을 맺어 갈 것이다. 입추가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슬이 내리며 쓰르라미가 운다’라고 한다.

이제 얼마 안가서 폭염도 서서히 가라앉고 가을이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입추 무렵은 여름이 남아있는 초가을의 경계에 있는 계절이다. 여름과 가을의 길목에서 마주치는 들판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려준다. 우리 모두 빨리 폭염이 물러가기를 바라며 초가을의 정취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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