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참 잘했어요”요즘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세대(1950년대 생 70년대 학번)가 국민학생(초등학생) 때였던 1960년대에는 학교 숙제를 내면 선생님이 읽어보시고 “참 잘했어요”라는 커다란 도장을 찍어주시곤 했다. 그 도장엔 남녀학생의 웃는 얼굴도 새겨져 있었다. 별것 아니지만 그 도장엔 인주/잉크뿐만 아니라 묘한 기쁨이 함께 묻어 있었다. 칭찬의 마법이기도 하다. 그 도장을 찍어주는 선생님의 마음속에도 아마 그런 기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빈발하는 교권 추락의 뉴스들을 접하면서 문득 이 도장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떠오른다. 그 60년 전과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졌다. 발전과 번영은 이제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는다. 일부 세력은 그간의 노력을 알아주지도 않고 폄하한다.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다.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를 오가던 그 아련한 기쁨이 교육 현장에서 사라졌다.
‘교단’은 오랜 세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교사’는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선생님들이 실망과 좌절로 교단을 스스로 떠나기도 하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문제적인 아이들과 더 문제적인 학부모들이 원인임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예사로 벌어진다. 지금 우리사회는 ‘인간의 기본’이 총체적으로 무너져 있다. 이 붕괴는 좀 과장하자면 산사태로 무너지는 흙더미의 붕괴나 펄펄 끓는 이상기후로 무너져내리는 빙산의 붕괴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아무도 그 책임을 지는 이가 없고 아무도 그 후과를 걱정하는 이가 없다. 걱정되는 것은 그런 현장에서 자라나는 ‘괴물’들이다. 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괴물들이다. 그런 괴물들은 이미 우리 사회 도처에서 곰팡이처럼 바이러스처럼 증식 중이다.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인간 대개조, 사회 대개조의 혁명적 조치가 필요한 시대다. 법조문 몇 개 뜯어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가치혁명이 요구된다. 깃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자도 부처도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이미 훌륭한 깃발이다. 문제는 그 깃발 아래 군사가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깃발 아래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깃발이 인기가 없는 것이다. 물론 불교와 기독교의 세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돈 내는 신도라고 다 백성은 아니다. 그런 현실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라”고 일갈한 저 예수의 말이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에 공감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서(恕)”(상대방과 같은 마음이 되어보는 것)라는 글자 하나만 나 자신이 실천해도 그 순간 세상은 천국이 될 수 있다. 부처가 말한 “자비”나, 소크라테스가 말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그런 단어 하나의 실천이 관건이다.
공자-부처-소크라테스-예수 이들의 언어는 사실 그 단어 하나하나가 다 보석같은 것들이다. 진주같이 영롱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도 알지 않는가. 그 보석이 흙 속에 있어서야 그 진주가 심해에 있어서야 그 빛을 발할 수가 없지 않은가. 드러내야 한다. 그것을 각자가 자기 목에 손가락에 걸고 끼고 해야 한다. 그 작업도 결국은 선생님들이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이 실망하고 좌절하여 교단을 떠나고 세상을 떠난다. 이대로 방치하면 이 세상은 괴물들의 천하가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의 점령지는 이미 확대일로다. 노르망디 상륙, 인천 상륙이 시급하다.
공-부-소-예를 비롯한 철학 공부를 전 국민에게 의무화하는 조항을 헌법에 넣고 그 의무를 위배하는 자는 감옥에 넣어야 한다. 너무 더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인가? 아니다. 정신은 멀쩡하다. 이 글에 대해 훌륭하신 선생님이 마음속에 미소를 띠며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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