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디카시의 비전, 스티브 잡스가 현실화시켜 주다
도민칼럼-디카시의 비전, 스티브 잡스가 현실화시켜 주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21 19: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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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시인·창신대학교 명예교수

이상옥/시인·창신대학교 명예교수-디카시의 비전, 스티브 잡스가 현실화시켜 주다


문자 미디어의 산물인 시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시의 위의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래파 류의 생경하고 난해한 시가 주도하는 당시 시단은, 프로슈머가 등장하며 단순한 시의 독자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시의 독자이면서도 생산자이고자 하는 욕구를 미래파 류의 시로서는 담당할 수는 없다고 재단했다.

뉴미디어 시대에는 새로운 시적 대응이 필요했는 바 그 대응으로서 구체화 된 것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로서 극순간 멀티언어예술을 비전으로 하는 것이었다. 미래파 류의 시가 시단을 풍미할 당시 필자는 창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디어 진화에 따라 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한 모색으로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쓰는 새로운 시, 즉 ‘디카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2004년 9월에 펴낸 최초의 디카시집 ‘고성 가도’를 출간한 것은 주지하는 바다. 물론 디지털 한국문학도서관에 사전 연재로 그 가능성을 확인 터였다.

디카시집 후기 ‘디카시, 언어 너머의 시...’의 전문에 자작시 해설에서 썼던 것을 이렇게 인용했다. “어둔 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면, 시가 생각나지 않는가. 별은 시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가의 순결한 눈빛을 보면, 시가 생각나지 않는가. 아가의 눈빛은 시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산속에서 이름 모를 꽃을 만나면 시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 꽃은 시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시는 아름답고 맑고 진실한, 삶의 가장 가치로운 것들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명제는 동양 시학의 시서화로서의 자제시, 서양시학의 구체시 등에서 이미 언어의 불완전성, 한계성을 넘어서고자 언어 너머의 시를 끊임없이 시도해 왔던 시적 전통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시라는 것이 시인이 생산해낸 것을 넘어서 '아름답고 맑고 진실한, 삶의 가장 가치로운 것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면, 자연이나 사물에서 그런 풍경을 디카로 찍고 그것을 짧게 언술하여 영상기호와 문자기호를 하나의 텍스트로 SNS를 활용 실시간 쌍방향 소통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당시에는 현실화 될 수 없는 비전이었다. 고성에서 창신대로 출퇴근하며 길 위에서 포착한 풍경과 언술을 연구실 컴퓨터에 디지털카메라를 연결해서 디지털 한국문학도서관 연재코너에 탑재했지만 실시간 쌍방향 소통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디카시의 비전을 현실화시켜 준 인물은 스티브 잡스다. 2004년 디카시가 출현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이며 걸어다니는 1인 미디어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지만 2011년 병세 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하고 곧바로 향년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디카시는 스티브 잡스가 깔아 놓은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에 기대어 순간 포착, 순간 언술, 순간 소통하는 극순간 멀티언어예술의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한 천재가 세상을 바꿔 놓았다. 디카시는 디지털 정신을 반영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향유하는 시, 시의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이기를 소망하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프로슈머들이 주체가 되는 디지털 시대 최적화된 새로운 시로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길 위에서 시를 찍고 써서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는 SNS를 활용 실시간 쌍방향 소통하는 디카시의 꿈은 이제 막 개화해 K-리터러처로 한글과 한글문화를 알리는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도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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