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여행 중 우연한 선물
도민칼럼-여행 중 우연한 선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30 14: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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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
길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여행 중 우연한 선물

얼마 전 친구로부터 수필집 한 권을 받았다. 해외 봉사활동으로 알게 된 그 친구의 직업은 의사인데 거의 10여 년 동안 많은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접했던 우연한 만남과 예기치 않게 경험했던 일들을 담담하게 책으로 낸 것이다. 해외 봉사뿐 아니라 여행도 좋아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어려운 오지라 하더라도 궁금하면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다. 일반적으로 가기 어려운 곳에도 주저함 없이 다녀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존경스럽다. 나 역시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 나를 몰라보는 곳, 외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곳은 더 좋다. 그곳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 때문인 것 같다.

그동안 COVID-19 여파로 멈추었던 하늘길과 해외여행이 다시 열렸다. TV에서도 다양한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다. 최근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라는 방송을 보면서 예상치 않은 장소를 방문하고 현지인들을 우연히 만나면서 발생하는 재미있는 장면을 보며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꼈다. 나도 역시 여행 중 우연히 맞닥뜨린 멋진 장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미국 유학 시절 동급생과 나는 TV 방송으로 포레스트 검프 영화를 함께 보다가 갑자기 포레스트 검프가 앉았던 의자를 보러 가자는 황당한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간단한 반찬과 밥솥을 챙겨 차에 싣고 아이들을 태운 후 먼 길을 운전하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도 없는 그때 지도를 보며 열심히 길을 찾아 떠났고, 드디어 조지아주 사바나에 도착하였다. 포레스트 검프 의자는 길거리에 있지 않고 작은 박물관에 있었고 생각만큼 근사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조지아주에는 큰 나무와 가지에 달린 수많은 흰색 가지들이 인상적이었고 뿌리를 내릴 듯 드리워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컷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지도에서 벗어난 낯선 곳에 이르렀다. 길을 잃은 것이다. 일방통행의 긴 숲길이 끝도 나지 않을 듯 연결된 어두운 길이 한참을 이어지다가 갑자기 시야가 뻥 뚫리며 대서양 해안가가 등장했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파도에 쓸려 누워있는 큰 고목들과 대서양의 거대한 수평선의 모습은 어느 아름다운 달력 사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웅장했다. 감히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눈으로 보면서 마음에 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그만큼 속이 시원한 장관과 그 모습을 보며 느꼈던 경건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던 그 겸손한 감정을 다시 가져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세계 일주를 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보며 감탄을 할 것이다. 방영 중인 프로그램에서도 인도 갠지스강의 감동적 장면을 보며 경건함과 겸손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 느낌에 깊이 공감하며 그것을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가졌음에 감사했다.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버킷 리스트 10가지 중 세계 일주를 목록에 넣는 것을 자주 보았다. 유명 관광지를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방문하고 사진을 찍는 일도 좋은 추억이다. 그러나 계획에 없었던 장소나 예정되지 않았던 일들의 발생으로부터 오는 긴장감, 현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 등은 내 자리로 돌아와서도 충만한 기쁨으로 남아있다. 그러려고 자꾸 여행을 가고 싶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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