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내 생각’의 정체
아침을 열며-‘내 생각’의 정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31 14: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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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내 생각’의 정체

한때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이 시대적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생각의 충돌’이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이게 지금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좌우대립, 진영대립이 망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하지만 엄청 위험한 지경이다.

그 문제는 일종의 벌집이라 어설프게 그걸 건드릴 수는 없다. 그 대신, 관련된 다른 문제를 하나 짚어본다. 불꽃 튀기는 그 생각의 충돌에서, 이른바 ‘내 생각’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는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른바 ‘내 생각’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진리’의 형국이다. 그것은 ‘확신’이라는 단단한 바위에 그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바위도 바위 나름이다. 우리는 한 번쯤 그 ‘내 생각’의 역사 내지 유래를, 즉 형성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내 생각’인 그런 건 없다. 그건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였을 때를 돌아보면 곧바로 확인된다. 처음엔 엄마나 아빠에게 그리고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들은’ 것이, 그리고 ‘배운’ 것이, ‘읽은’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내 생각’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반복적이거나 혹은 인상적인 것이 특히 그렇다. 뻔하고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그게 이른바 ‘내 생각’이 형성되는 과정 내지 메커니즘이다.

한 가지 증거랄까 사례가 있다. 오랜 세월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이른바 ‘과제’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부과하는데 그걸 평가하면서 느끼는 바다. 읽다가 보면 뭔가 익숙한 말들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수업시간에 해줬던 말이다. 인용도 아니고 나 자신이 직접 ‘깨우친’ 바다. 학생이 그걸 말하는데, 거기 그게 선생인 내 말이라는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학생 본인의 ‘내 생각’으로 둔갑해 있다. 기억해줬다는 점은 기특하지만 그게 지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괘씸하다. ‘지적 소유권’을 제기해야 할 판이다. 물론 웃어넘긴다. 하지만 그런 사례가 말해주는 바가 있다. 그게 그 친구에게는 확실히 ‘내 생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즉 누군가에게 들어서) ‘내 생각’이라는 것은 형성되는 것이다.

그 ‘누군가’라는 것이 실은 우리의 언어환경이다. 살아오는 과정의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 그들의 말과 글,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 언어와 그 언어에 실린 정신을 눈으로 귀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에 깔린 혈관을 타고 떠돌다가 이윽고 우리의 세포에 스며 우리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것이다. 즉 ‘내 생각’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환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어떤 언어들이, 어떤 ‘생각’들이, 지금 우리 정신의 주변에 대기로서 머물며 우리에게, 우리의 정신에게 호흡되고 있는가. 들려오는 단어들은 참으로 혼탁하다. 가장 강력한 통로는 스마트폰이고 TV 화면이고 신문지면이다. 그 다음이 아마 패거리의 말이고 선생님의 말이고 그리고 맨 마지막이 어쩌면 책일 것이다. 그 언어들을 분석해보면 아마 지금 우리 사회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천박하고 위험하다.

정치와 관련된 것들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의 삶과 직결된 정치가 그 지경이다. 국가와 국민의 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정치이건만 그 동네의 언어들이 너무나 혼탁하다. 저질스럽다. 찬란한 미래는커녕 당장 내일 모레가 걱정스럽다. 우리는 지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발길을 돌려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 제일을 지향하는 질적인 고급화이다. 이제 남은 길은 그것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진영싸움을 부추기는 천박한 언어들을 차단해야 한다.

이런 우국의 언어가 절실하고 시급하건만 이런 건 왜 ‘내 생각’이라며 퍼트려주는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좀 북을 치고 장구를 치며 손님을 끌어모아 주었으면 좋겠다. 이 약을 좀 팔아야겠다. 병든 나라를 고치기 위한 영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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