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악순환의 고리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악순환의 고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03 15:3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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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시인
박우담/시인-악순환의 고리

이방인의 뫼르소가 살인을 부를 만큼
땡삐 떼 같은 햇살
바깥의 현재
문지고리 단단히 붙잡은 채
물끄러미 서 있는 물상 하나
나의 현재, 고사목처럼
깡마른 세월,
잃어버리지 말아야 했던 자아라든가
우물 속 깊이 감춰야 했던 자존이라든가
쓸모없는 것들이라 찢어버린 적도 있었지
……(중략)……
아,
이 나이 먹으니
손톱 속 반달만큼씩 태어나는
잊고 있던 자아라든가, 자존이라든가
내 속에 자라고 있었나 보다
어쩌라고
마트료시카
나의, 마트료시카여

(박진옥의‘마트료시카’)

벚나무 이파리가 떨어진다. 진주역 광장에는 벌써 ‘가을 단풍 기차여행’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제 에어컨 실외기의 열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태풍이 한 번쯤 지나가면 이제 가을이 바짝 다가오겠다. 숲이 “땡삐 떼 같은 햇살”을 털어버리고, 붉은 도시처럼 손짓하겠지.

오늘은 박진옥의 두 번째 시집 ‘어스름, 그 골목 들어서면’에 수록된 작품 ‘마트료시카’를 소개한다. 박진옥 시인은 진주에서 태어나 현재 진주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작 활동하고 있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면서 박진옥은 인간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말하고 있다.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삶이 힘들다. 인간은 부대끼며 생활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학교나 직장 등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이도 있고, 반대로 갑질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구석진 곳에는 소외된 인간이 더러 있다. 시 ‘마트료시카’의 첫 줄에 ‘이방인의 뫼르소’가 등장한다.

소설 이방인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된다. 시인은 무엇을 말하려고 ‘뫼르소’를 등장시켰을까. 주인공 뫼르소의 내면적 갈등과 사회적인 이방인으로서의 존재를 다루고 있다. 시인은 인간 소외, 부조리 그리고 ‘자아’를 말하고 있다. 현대인은 고도로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부조리와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부조리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말한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커지는 것이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 등이다. 이 작품을 읽다가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왜 생각나는 걸까.

시 제목 ‘마트료시카’처럼 현실에서는 부조리가 부조리를 낳고 갑질이 갑질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들다. 실외기처럼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자들은 존재감이 없고, 온갖 술수로 기만하는 자들은 권력과 부를 축적하고 있어, 사회라는 숲은 건강하지 못하고 ‘고사목’이 되어간다. 우리는 부조리에 대해서 더욱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겠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어머니의 시신 주변에서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담배를 피우고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을 마치고 난 후 해수욕장에서 마리라는 여인을 처음 만나 즐겁게 보낸다. 그러다가 우발적으로 총을 쏴서 아랍인을 죽인다. 햇발이 눈부셔서 아랍인을 살해했다고 말한 주인공 뫼르소.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 사람은 부조리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철근 없는 아파트’ 명단이 나돌고, 초등학교 여교사의 극단적 선택,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등 억울한 이웃을 우리는 가끔 본다. 인간은 타인과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협력하고, 공정한 대우를 원한다. 그러나 부조리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뫼르소’는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부조리를 느낀다. 반항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나타내는 것이다.
/잃어버리지 말아야 했던 자아라든가 /우물 속 깊이 감춰야 했던 자존이라든가/ 우리는 어디에서 참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은 자기 인식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모습을 알아보는 데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삶을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발견하고 달성하다 보면 /잊고 있던 자아라든가, 자존이라든가 / 내 속에 자라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아무도 잎이 떨어지는 걸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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