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디카시는 디카시다
도민칼럼-디카시는 디카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18 15: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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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창신대학교 명예교수·문덕수문학관장
이상옥/창신대학교 명예교수·문덕수문학관장-디카시는 디카시다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의 트렌드다. 디카시는 본격문학이면서도 생활문학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향유하는 디지털 시대의 K-리터러처로 각광받으면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교포사회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가운데, 해외 대학 한국어과 학생들의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카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진을 활용해서 시를 쓰는 사진시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는 언어 예술이면서도 언어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동양시학 전통에서도 그렇고 서양시학 전통에도 그렇다. 시인은 언어의 불완전성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시인은 일상적 언어만으로 시적 영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비유나 상징 같은 수사적 기교를 사용하지만 이것이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인들은 새로운 언어를 찾기에 골몰한다. 기존의 낡은 언어로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기성 시인이 사용한 언어를 반복적으로 차용해서는 자신의 시학을 구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진 시인들은 더욱 언어의 빈곤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시인은 언어 확장의 한 방편으로 다른 예술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도모하기도 한다. 동양시학에서는 제화시를 거론할 수 있다. 동양화의 경우 화폭의 여백에 그림과 관계된 내용을 테마로 시를 첨록했는데, 이것이 제화시다. 본인의 그림에 직접 쓴 시를 자제시라고 하고 타인의 그림에 쓴 시는 타제시라 한다. 제화시로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제한 ‘몽유도원도제찬’이 유명하다.

서양시학으로는 구체시가 있다. 구체시 역시 언어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언어를 시각화하거나 다른 예술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했다. 일부 그리스 시인들은 BC 3세기 초부터 일부 시에 외적 형태를 부여했다. 르네상스 시대와 17세기에는 도형시 또는 징표시라는 형태화한 시 형식이 유행하였다. 구체시는 여러 가지 활자 형태와 크기 및 색깔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사진을 본문에 첨가하는 등 언어를 넘어서는 과격한 실험까지 했다.

20세기 동양의 제화시, 서양의 구체시적 전통 위에서 먼저 등장한 것이 사진시다. 대표적으로는 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전쟁교본’이다. 브레히트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린 사진에 4행시를 붙인 것을 시집으로 묶은 것이다. 브레히트가 전쟁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쟁의 이미지에 시를 붙인 것으로, 죽기 1년 전인 1955년에 출간됐다.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형태시 양식으로 황지우, 이승하, 신현림 등이 사진을 활용한 시를 쓰기도 했지만, 브레히트 류의 사진시는 개인 실험을 넘어 장르로까지 발전하지도 못했다.

디카시도 사진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사진시이면서도 사진시가 아니다. 사진을 활용한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시와 사진을 일시적으로 결합한 포토포엠이 있다. 포토포엠도 사진시라고 명명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는 시사진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포토포엠은 기성의 시에 어울리는 사진을 붙이는 방식으로 사진과 시는 각각 독립성을 지닌다.

사진을 활용하는 사진 시의 범주에서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아직은 디카시가 유일하다. 디카시는 디지털 환경 자체를 시 쓰기의 도구로 활용해서 스마트폰 내장 디카로 순간 포착하고 순간 언술해서 SNS를 활용, 순간 소통하는 극순간 멀티 언어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아날로그 시대 산물인 브레히트류의 사진시와 다른 양식이다. 디카시는 시이면서도 시가 아니고 사진시이면서 사진시가 아니다. 디카시는 디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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