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주에서 전생의 인연을 만나다(3)
기고-진주에서 전생의 인연을 만나다(3)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19 14: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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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진주에서 전생의 인연을 만나다(3)

불신의 등에는 광배용 촉이 없고 대좌 뒤쪽의 윗면에 광배를 꽂은 구멍이 나 있다. 대좌는 낮은 팔각 기대 위에 두툼하고 큼직한 연꽃잎이 위 아래로 서로 엇갈려 배치된 단순한 형식으로 고식을 띠고 있다. 시무외 여원인을 맺었고 홑겹으로 입은 대의에는 U자형으로 연속하여 흘러내리는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의의 아랫단이 무릎 높이에서 끝나고 그 밑으로는 수직으로 주름이 진 군의(裙衣)가 드러나 있다. 주조기법의 특징을 비롯하여 비교적 간결한 신체의 조형성, 입가의 고졸한 미소, 두껍게 표현된 대의, 굵고 힘 있는 옷 주름의 조각수법 등은 이 상이 삼국시대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임을 보여준다.

두미섬에서는 절이 있었던 지역을 ‘절개’(寺浦:사포)라고 부르고, 부처님이 마셨던 샘물이라고 하여 ‘감로수’란 옹달샘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서기 44년 3월에는 소가야가 고성에 도읍을 정할 때 20개 도서(島嶼) 중에 두미섬은 미륵이 머문다고 하여 ‘둔미도(屯彌島)’라 불렀고, 두미섬(頭尾島)의 지명은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蓮花世界)의 처음과 끝(頭尾)을 알고자 하거든(欲知) 석가모니(世尊)에게 여쭈어보라(欲知蓮花藏頭尾問世尊)’는 불경에서 유래 되었다는 민간 어원설이 있다.

또 오래전 남해안 일대를 지키던 설웅장군의 아내 난실이 바다에 빠져 파도에 떠밀려 두미섬에 왔을 때 손가락이 잘린 아들이 스님이 되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부처님(金銅釋迦如來立像)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의 비탈진 산에서 발견되었기에, 필자는 발견이라 하지 않고 두미섬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한 것이다. 섬까지 입도한 아무런 전설이나 구전 등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부처님을 우리 두미섬에 영광(榮光)과 자비(慈悲)를 베풀기 위해 나와 같은 고향 섬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과 귀 일부는 처음 발견 당시에도 잘려진 상태이므로 발견한 그곳에 아직 있을지 모르는 이 부위를 찾아야 된다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준다. 혹 두미섬 사람들이 겪어야 될 모든 죗값과 고통을 부처님 혼자 몸이 부서지도록 막으면서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애달픈 생각이 든다. 절터가 있었다고 하는 곳에 다른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끊어지고 떨어진 부분을 모두 찾아 상처투성인 몸을 완전히 치료시켜 주는 것은 내가 해야 될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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