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무엇을 남길까?
도민칼럼-무엇을 남길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25 16:0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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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무엇을 남길까?

지난 9월 MBC에서 방영된 다큐 ‘뭐라도 남기리’ 2부, 3부에 지리산 사람들이 나왔다. 요즘 핫한 김남길, 이상윤 두 배우가 길 위에 스승들을 만나 요즘 사람들의 고민을 말해주고 답을 얻는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2부에서는 에베레스트 졸라체에서 크레바스(빙벽틈)에 떨어진 후배를 구하느라 손가락을 8개나 절단한 등반가 박정헌 대장과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로 많이 알려진 정지아 작가가 출연했다. 3부에서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라는 시로 ‘지리산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원규 시인이 나와 디카시(디지털카메라와 시를 접목한 문학 장르)의 세계로 두 배우를 입문시키기도 했다.

배우들이 진행자로 참여해서 이목을 끌고 각 지역에서 자신들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형식의 다큐가 신선하기도 했지만 나는 제목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뭐라도 남기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외로 많은 것을 남긴다. 꼭 유명하고 잘난 사람들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남기고 유산을 남기고 추억을 남기고 무덤을 남기고 업적도 남기고 역사도 남기고 그러다 잘 되면 이름도 남긴다. 멋진 사람으로 남기도 하고 조상이지만 부정하고 싶은 사람으로 남기도 하고 이름은 없지만 좋은 기억의 어른으로 남기도 한다.

무엇으로 우리는 후대에 남아야 할까? 이런 질문까지 들어가면 좀 무거워지기는 한다. 그래도 생각해 볼 문제다. 최소한 그악스러운 어른으로 남거나 고집만 센 어른으로 남거나 모든 것이 돈만 우선이어서 한 푼도 쓰지 않으려고 벌벌 떠는 어른으로 남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즈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곧 추석이 오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10월 2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서 제법 긴 휴가들을 얻는다. 물론 비정규직 프리랜서나 순환근무를 하는 분들에게는 늘 그림의 떡처럼 부러운 연휴지만 많은 이들이 이 긴 휴가의 혜택을 받는다.

우리에게 명절은 무엇일까? 핵가족화 시대 이후 명절의 의미는 달라진지 오래다. 부모님들이 살아계시거나 경제적인 주도권을 가진 경우는 예외지만 지금 5, 60대가 집안의 가장 위인 경우,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가는 풍습은 많이 없어진 모습을 본다. 하지만 여전히 명절은 가족이 모여야 한다는 풍습 때문에 시골에 사는 경우, 남의 눈치도 보인다. 자식들이 오지 않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요즘은 역귀향도 많이 늘었다.

우리가 배운 명절은 즐거웠지만 실제 즐겁지만은 않은 집도 많다. 직장을 부부가 다 다니거나 시댁이나 처가가 지방인 경우, 오가는 일정에다 변화하지 않은 음식 장만으로 명절 부부갈등도 여전하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일 년에 고작 두 번이라 생각하지만 자녀들 입장에서는 직장을 다니다 길게 쉴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명절은 이제 긴 휴가를 받을 수 있는 연휴,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모처럼 가족이 다 모이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사실 상대적으로 괜히 쓸쓸해지는 날이 되어버렸다. 영국처럼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만들어 명절스트레스를 없애주는 프로그램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달라져 가는 명절에 우리 부모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진작 새로운 가풍의 시대가 도래했다.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 대하여도 고민할 때가 왔다. 아무리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외쳐도 돈이 우선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인정도 많고 적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인데 각박한 시대를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주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관계가 우선인 한국 사회에서 인맥은 참 중요하다. 사람을 남겨주는 일 그것은 돈으로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그 인맥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혈연, 지연을 내세우지만 가장 큰 것은 실상 사람의 됨됨이다. 이원규 시인의 ‘사람의 향기가 길을 만든다’는 말처럼 사람이 일의 중심이고 사람이 방법을 찾고 사람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돈을 줄 것인가? 사람을 줄 것인가? 부모가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면 자녀들이 들어줄 것인가? 나도 우리도 돌아오는 명절에는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명절에 다 같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다 같이 이 세상 살아가는 가치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통하지 않아도 가치는 통하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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