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추석을 앞두고
진주성-추석을 앞두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26 15: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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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추석을 앞두고

여름 내내 거추장스럽던 홑이불이 간밤에는 얇아진 듯 서늘하여 선잠을 깼더니 창문 너머의 앞 베란다에서 귀뚜라미가 달빛을 붙잡고 울어댄다. 며칠 전부터 밤이 이슥해지면 울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며 한밤의 잠을 깨웠다. 화분 틈새에 자리를 잡았는지 쫓아내려고 두어 번을 시도했으나 허탕만 쳤다. 어렵사리 든 잠이 밤중에 깨이면 다시 잠드느라 애를 먹는다. 날만 새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날려 보내야지 하며 미리부터 벼루다가 새벽잠이 깊었던지 아침은 가뿐하다.

밥상머리에서 집사람이 “어젯밤에는 영 잠을 설쳐서…” 하며 눈언저리를 손바닥으로 비빈다. 언뜻 안방 쪽에도 귀뚜라미가 울었나 하고 “귀뚜라미 때문에?” 하고 입이 떨어지려는 순간 “별것도 안 할 거면서 신경이 쓰이네. 내일 아침에 시장을 갔다 옵시다” 영점 1초 사이로 자폭 위기의 순간을 모면했다. 귀뚜라미라는 말이 나왔더라면 어쩔뻔했나. 추석 장을 볼 것이 걱정되어서 설친 잠을 뭐 귀뚜라미가 어쩌고저쩌고했더라면 댓바람에 “남자들은 저렇다니까”하고 퉁을 맞았을 것이다.

매일 같이 끼니때만 되면 ‘반찬 뭐로 하지’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도 나는 주제넘게 “되는 대로 먹자” 했다가 “되기는 뭐가 돼요? 내 손 안 가고 절로 되는 게 뭐가 있어요? 말은 쉽지” 매번 들으면서 불쑥 나서다가 퉁을 맞는다. 아닌 게 아니라 끼니때만 되면 여자들을 걱정시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추석이 낼 모래로 코앞에 다가왔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 몇 가지만 살 거요. 차례상이 썰렁해도 아무 말 말기요. 알았죠?” 설 추석만 다가오면 하던 소리를 또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손 재배하고 눈으로만 보는 남정네들은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늘그막에 철이 든다더니 이제야 뭔가가 보이는 것 같다. 요즘은 주문하면 시간 맞춰 배달해주는 차례상 전문업체가 날로 성업 중이라니 이해가 되고 남는다. 물가도 물가지만 하나하나가 제다 손 잡히는 일이다.

지지고 부치고 삶고 데치고 버무린 그릇 설거지만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예법 맞춰 힘들게 만든 것도 사나흘 지나면 더러는 버린다. 이번 추석에는 과⸱채⸱탕⸱포 모두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만 차리기로 했다. 집사람의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식구도 단출하다. 차례상 앞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귀뚜라미도 내쫓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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