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풍류의 바다(1)
기고-풍류의 바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05 15:5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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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섭/전 합천교육장
임장섭/전 합천교육장-풍류의 바다(1)

나는 바다에 빠져있다. 그것도 깊숙이 말이다. 물이 많고 깊음에도 두렵거나 벗어나고픈 마음이 없다. 그저 즐거워할 뿐이다. 풍류의 바다가 내게 운명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시조창에 입문한 것은 1984년도다. 시조창은 정가(시조, 가사, 가곡)의 한 장르다. 그해 3월 통영 사량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내륙지방에 살다가 사방이 바다인 섬 생활이 시작되었다. 밤낮을 둘러봐도 창망(滄茫)한 바다다. 섬이 풍기는 갯내에 익숙도 하기 전이었다. 봄 아지랑이 피는 어느 날 김장옥 선생이 내게 시조창을 하자고 했다.

김 선생님은 성실한 사람으로 다가왔고 얼굴은 검고 활력이 넘쳤다. 그 무렵 TV 드라마에 쿤타킨테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그런 영향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쿤타킨테라고 불렀다. 개성과 멋이 있는 호칭이었다. 그와 나는 아침이면 산에 올라 발성 연습을 했다. 아 에 이 오 우를 목청껏 질렀다. 가슴이 뚫리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까마득히 보이는 삼천포 화력발전소가 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위안을 주었다.

방학이면 진주 향교에서 공부를 했다. 수강생의 나이와 직업도 다양했다. 공부방에 들어가면 예(禮)가 우선이라며 누구든 큰 절로 인사를 하는 게 불문율로 지켜졌다.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도 있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은 온종일 공부를 하였다. 오전에 한두 시간 선생님께 지도를 받고 나면 그 후로는 먼저 익힌 이에게서 배웠다. 자연스레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지도는 구자명, 장남기 선생이 맡고 있었는데 역할이 각기 달랐다. 구 선생은 이론에 중점을 두고 단체를 관리하는 분이셨고 장 선생은 영락없는 풍류객이었다. 소리가 뛰어나서 그가 남창질음(男唱叱音)으로 ‘푸른 산중’을 부르실 때는 저런 소리도 있나 할 만큼 경이로웠다. 거주지가 하동인데도 몇 날이고 진주에 머무는 것으로 봐 열정이 대단하였다. 그는 몸으로 지도하셔서 존경받는 스승이셨다.

교원사회에서는 교원예능경진대회가 있다. 배우는 첫해에 긴장감을 안고 출전을 했는데 어설픈 실력이라 떨어졌다. 열심히 노력하여 이듬해는 3등을 했다. 비록 상금은 없어도 상을 받았다는 자부심은 1등 못지않았다. 3등을 3회, 2등을 2회 하다가 출전한 지 6년이 되는 해에 1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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