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몽골 기행(4)
도민칼럼-몽골 기행(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05 15:5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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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몽골 기행(4)

얼추 한 시간 만에 시내를 빠져나온 것 같다. 군데군데 아스팔트 바닥이 떨어져 나가고 패였다. 편도 1차선 도로인데 고속도로인가 보다. 톨게이트를 설치하고 통행료를 징수한다. 본격적으로 허허벌판이 펼쳐진다. 수백 마리나 되는 소 떼와 양 떼 무리가 한가롭게 풀 뜯는 모습들은 장관이다. 그런데 먹을 만한 풀이 아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메마른 흙바닥에 달라붙은 풀이 우리나라에 된서리 맞은 잔디 모양이다. 우리가 못살았던 7, 8십년대 큰 도시 축구장에 잔디를 보는 것과 흡사했다. 덩치 큰 소나 말들이 온종일 열심히 풀을 뜯지만 배는 부르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하르간이라는 가시풀과 쇠뜨기과인 데르스 등 이런 풀들은 동물이 먹지 못하는 풀인데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가이드 설명이다.

제주도풍경이 문득 떠오른다. 한라산 자락 아래 초원에 소나 말이 풀 뜯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풀이 웃자라 무성하므로 잠깐 뜯어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지구촌에 분포한 초식동물의 행복 수치를 따진다면야 제주도에 소나 말은 먹거리 풍성하지요, 늑대나 곰 같은 천적이 없지요. 이러니 몽골 초원에 소나 양, 말보다는 훨씬 행복한 천국에 산다고 봐야 맞다. 그래서 사람은 서울서 살아야 하고 소나 말은 제주도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탄생했는가 보다.

처음도 끝도 없는 초원만 펼쳐진다. 달리고 달려도 게르만 보이고, 초원이다. 소 떼나 양 떼가 한가롭게 풀 뜯는 모습만 간간이 보인다. 야트막한 산에는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는 민둥산이다. 가도 가도 초원만 계속되는데 몇몇 여성회원이 소변을 하고 싶단다. 그러나 휴게소가 나타나질 않는다. 관광버스가 한참을 가다가 멈추어 선다. 그런데 판자 조각을 덧대고 덮은 거다. 흡사 4, 5십 년 전에 청계천 둑, 판잣집에 세 얻어 살 때 간이 공중변소를 연상케 한다. 남자 회원들은 허허벌판에 돌아서서 시원스럽게 해결했다. 여성회원들은 세계 각국에 뭇사람이 차곡차곡 배설한 재래식인 간이 변소에 악취를 코로 맡으며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불편을 겪었을 테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엘승타사르하이 모래 산에 도착했다. 썰매 타기와 낙타 타기 체험하는 남녀회원들이 동심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나이를 잊은 남녀회원들이 어린 일곱 살 소녀로 빠져든다. 모래 산을 배경으로 한다. 두 손을 높이 벌려 뛰며 하늘에까지 뛰어오르려는 자세를 취하며 인증샷을 남기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나로선 낙타와 말타기는 하지 말라는 아내의 엄명을 받았었다. 그때가 작년 가을에 몇몇 문학인들과 노래방에서 문학모임 뒤풀이를 하는 중이었다. 순간의 부주의로 허리에 3번 척추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었다. 낙타나 말도 타지 말라고 아내가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낙타와 말타기뿐만 아니라 모래 산에 썰매 타는 것도 포기하기로 했던 거다. 소년 소녀로 돌아간 회원들의 추억을 담아 주기 위해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댄다. 나도 그때로 돌아간 듯 덩달아 즐겁다.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 가옥인 게르 호텔에서 1박 했다. 다시 울란바토르를 거쳐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한단다. 그런데 어제부터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기어이 비를 뿌려댄다. 강수량 적기로 유명한 나란데 경남 문인들이 비를 몰고 오는 행운을 안고 왔단다. 몽골사람들로선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가이드가 너스레를 떤다. 몽골제국이 영화를 누렸던 8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거대한 칭기즈칸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말 타고 호령하는 전성기 때의 늠름한 모습이다. 고려 때부터 원나라에 지배받았고 한참 후에는 병자호란이 있었던 때가 주마등처럼 눈앞으로 지나간다.

이를 뒤로하고 곧장 말타기 체험에 나서는 사람들이 계속해 쏟아지는 궂은 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처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 회원은 물에 빠졌다 나온 생쥐를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말 타고 평원을 달리는 칭기즈칸 후예를 흉내 내 봤지 않은가. 계절로 친다면 우리나라 가을을 연상케 하는 가을비를 흠뻑 맞았지만, 회원들은 즐거운 표정들이 역력하다.

곧바로 테를지 국립공원 계곡으로 들어서는데 마침내 내리던 비는 뜸하다.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어깨동무하고 우리를 맞는다. 비로소 바위 숲이 우거진 틈새 산에 나무가 보인다. 우리나라의 전나무와 같다. 그리고 삼나무와 모양이 비슷한 침엽수가 군데군데 무리를 이루고 있다. 마치 귀한 존재들이니 사진을 찍으라는 듯 자태를 뽐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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