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왕의 D.N.A 더 높은 황제 D.N.A
진주성-왕의 D.N.A 더 높은 황제 D.N.A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11 16: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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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왕의 D.N.A 더 높은 황제 D.N.A

교육부 사무관이 자기 아들이 왕의 DNA를 가졌으니 담임 교사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해 대우해 달라는 등 협박한 사실이 보도되자 전국에 알려졌다. 아들이 초등학교 재학 중인데 장애를 가진 아들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되어 부탁했고 특이한 방법을 사용해 징계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왕의 DNA를 살펴보자. 신라 박, 석, 김씨가 있었고 가야 김씨가 있었고 고려 왕씨가 있었고 고구려 대, 고씨 등이 있었고 부여 부여씨가 있었고 발해 대씨, 백제 해(부여)씨. 조선 이씨 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는 하, 주나라가 있었으니 황제라 칭하지 않았고 진나라 때 처음으로 시황제라고 했다. 수, 당, 한, 원, 금, 명, 청나라가 있었고 모두 황제가 되고 아들들은 왕으로 봉해 지방에 파견했다. 조선은 왕보다 엄청 높은 황제가 보낸 칙사(勅使)가 오면 두려워 수백 가지 공물을 바쳤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피난한 선조 대왕은 명나라 황제국 구원 장군들이 압록강을 건너오자 큰절을 올렸다고 ‘임진전란사’에 기재되었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중국 황제가 직접 찾아와 우리 땅에 거주케 되는데 중국 대하국 황제인 명옥진의 아들 명승(明昇)과 승(昇)씨 들이다. ‘성종실록’에 성종 6년에 명승 자손에게 토지 10결(3만평)을 하사하고 또 개성에 사는 명귀석이 신의 고조부이신 소무 황제인 대하국 황제 명옥진(明玉珍)의 아들 명승이 그의 어머니 팽씨와 명나라 포로가 되자 명나라 황제가 조선에 가서 살라고 했다고 탄원해 ‘인조실록’에 기재되기를 명씨 자손들은 공역을 면제하고 군역을 시키지 말라는 명나라 황제 조서를 본 인조가 그대로 윤허했다고 기재되었다.

고종 때 대하국 황제 후손 명씨가 또 특혜를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 1년 9월에 도적 이복해가 자기는 당나라 태종 황제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자 백호 추승이 잡아 중국으로 돌려 보냈다고 기재되었다.

우리도 조선 말기에 고종 황제, 순종 황제가 계셨다. 일본은 전설적인 진무 때 황제 제도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의 영종 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 이용상이 반란을 피해 경기도 옹진에 정착해 살면서 주민들을 이롭게 하자 왕이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식읍 2천호를 주었고 장남 이간은 좌정승이 되고 차남은 안동부사 되었다. 정선 이씨도 베트남 황제의 직계 손이라고 기재되었다.

고려 때 묘청(妙淸:淨心)이 1135년 서경에서 대위국을 세우고 황제(皇帝)라고 칭했다.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이 묘청이 가장 자주적인 황제라고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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