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진주성-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24 15:4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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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하늘이 높아져서 고추잠자리가 낮게 날면 푸르렀던 들판은 황금 물결이 일렁이고 갈가에는 코스모스가 핀다. 방송국마다 앞다투어 김상희의 노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내보냈다. 반세기의 저편 60년대 후반이었다. 그때의 이맘때면 어디를 가든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이였다. 그래서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하고 가을 길을 걸었다. 그때의 이맘때인 지금은 어느 길을 가더라도 코스모스는 없다.

기다리다 길어진 목이 애처로워 오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던 길가의 코스모스는 어딘가로 떠났다. 산길 모퉁이에도 없고 들길에도 없고 강둑에도 없다. 간이역의 플랫폼 저만치에서 한사코 기다리며 섰더니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보내고 서운해서 철길 따라 손 흔들던 코스모스는 이제는 그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다. 서운해서 서럽게 돌아선 것일까. 누구도 찾지 않는 언덕 위의 들국화도 떠나버린 가을, 길가의 코스모스도 어딘가로 떠나갔다. 코스모스 옆에 서서 들국화 바라보던 고개 숙인 억새가 세월을 하얗게 이고 드문드문 길섶에서 외로움을 달랠 뿐, 풀꽃 하나 볼 수 없는 삭막한 가을 길을 기러기도 외면하고 하늘 높이 날아간다.

소득 없는 정서보다 실익 있는 영악함이 가을 들판에 코스모스를 무더기로 갔다 부어 축제를 연다. 색색 가지의 코스모스를 들판 가득히 숨이 막히게 쏟아놓고 딴 세상을 꾸몄다. 빼곡하고 촘촘하게 꽃 물결이 넘실거린다. 꽃만큼이나 사람도 북적거린다. 우쭐우쭐 껍죽대며 북새통이다. 코스모스가 사람 구경하느라 목이 길어졌을 뿐, 잃어버린 고향, 옛정도 멀어졌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품은 정도 사라졌다. 청순가련하여 사랑받던 코스모스는 가을 길에서 쫓겨나 울타리 안에 갇혔고, 외로워서 기다리는 언덕배기의 들국화는 전설이 되었다.

‘옥이 흙에 묻혀 길가에 밟히이니’ 오가는 사람마다 흙이라 했는데, 코스모스도 들국화도 잡초에 묻혔으니 잡초일 뿐, 거칠 것 없이 베어내는 예초기를 들쳐메었으니 코스모스도 들국화도 오로지 제거의 대상일 뿐이다. 가상의 세계로 자청하고 들어선 오늘은 어제가 옛날인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차창 밖을 보는 사람도 없고 들국화를 바라볼 사람도 없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기다림이 되는 가을, 단풍 같은 마음으로 노래하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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