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세월보다 자연의 변화가 두렵다(2)
기고-세월보다 자연의 변화가 두렵다(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05 15:3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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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세월보다 자연의 변화가 두렵다(2)

그때 겨울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기온이 있었지만, 당시 겨울은 매섭게 추웠고, 어떨 때는 눈이 3~40㎝ 넘게 쌓일 때도 있다. 눈이 제법 많이 내린 날이면 마을 강아지와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주변 산과 들을 쏘다니며 종일 신나게 뛰놀았다. 집집에서는 경쟁하듯 눈사람을 큼직하게 만들어 마당 끝에 세워두고 서로 자랑을 한다. 마을 청년들은 골목길 곳곳에 눈사람을 만들어 보초를 세워놓고 양지바른 뒷산으로 올라가 토끼몰이를 하고, 때로는 한두 마리씩 잡아 오기도 했다.

그랬던 겨울이 지금은 도랑물이 제대로 얼지도 않고 눈발이 휘날리는 정겨운 모습도 보기 힘들다. 올여름 장마기와 같이 과거 장마와는 달리 폭우가 장기간 전국 곳곳에 쏟아지면서 큰 피해를 주었다. 기후가 이렇게 크게 변하고 있다.

음력 정월과 2월을 설 기분에 들떠 금방 보내고 나면 어느새 도랑 가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고 논밭 두렁에는 제비꽃 같은 자잘한 꽃들이 장식을 한다. 이때가 되면 강남 갔던 제비들이 쏜살같이 날아와 ‘지지배배 지지배배’ 반가운 목소리로 봄소식을 전한다.

어릴 적 나는 매년 봄이 오면 제비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제비를 보면 먼저 흥부 놀부 이야기가 떠올라 좋았다. 착한 일을 하면 내게도 흥부네처럼 좋은 박씨를 물어다 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나름대로 착한 일거리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지만, 제비에게 감동을 줄 만한 일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제비는 아름답고 인정 많은 농촌에서 농민들의 애정을 받으며 살았다. 초가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수시로 마루에 분비물과 둥지 부스러기가 떨어져 주변을 불결하게 하지만, 순진한 농심들은 항상 그를 길조(吉鳥)로 여기며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나에게 매년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가지게 하던 제비가 농촌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은 지가 벌써 15여 년이 더 된듯하다. 나는 지금까지도 서운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제비가 없어진 농촌 풍경은 주인공이 빠져버린 뮤지컬처럼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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