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단풍 예찬
진주성-단풍 예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07 16:03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단풍 예찬

아침 안개를 걷어낸 가을 햇살이 이슬을 깔고 눈이 부시게 찬란한 아침,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베란다 바깥의 아침 풍경이 단풍으로 황홀경이다. 밤이슬을 적시며 짙푸른 빛깔을 헹궈낸 정원수들이 하루가 다르게 저마다의 색깔로 영롱하게 물들었다.

단풍의 색깔도 나무마다 다르다. 짙은 적색이 있고 밝은 황색이 있어 새빨갛기도 하고 샛노랗기도 한 빛깔들이 푸른 잎을 섞어가며 어우러져, 색감의 아름다움이 숨이 막히게 황홀하다. 사이사이에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섞여서 가지각색으로 물든 단풍이 정원 가득하게 가을을 푸지게도 끌어다 부었다.

멋지고 아름답다. 영롱하고 화려하다. 요란하지도 않고 야단스럽지 않게 빼어나게 아름답다. 요염하지 않고 영롱하면서도 거만스럽지 않고 화려하다. 피곤하게 경건하지도 않고 무겁게 엄숙하지도 않다. 현란하게 들뜨지 않고 숙연하지도 않으면서 그윽하고 차분하다. 흔들리지도 않고 흔들지도 않는 고고한 듯 고상한 심지 깊은 겸허한 아름다움이다. 무릉도원이 이만할까? 도솔천이면 이러할까? 별천지의 별세계다.

더는 갖지 않아도 충분하게 행복하다는 욕망의 저편, 유명세를 부러워하지 않으며 많고 적음도 따지지 않고 높고 낮음을 비교하지 않으며 경쟁하지 않는 아우름이다. 풍악산이 아니라도 좋고 설악산이 아니라도 좋은 지금의 자리에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색깔로 물들인 청순한 아름다움이다. 가질 만큼 가져보라는 저 너그러움, 누구에게도 차별하지 않는 베풂과 나눔의 박애, 갖출 것 다 갖춘 격조 높은 품격이 은근히 부러움을 사게 한다. 야릇하게 시샘이 난다. 옆의 옆에도 있고 앞의 앞에도 있는 어우러짐, 서로가 되어 어우러지지 않았으면 저토록 예쁘고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며 이토록 황홀한 풍광을 자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치장하지 않은 아름다움의 냄새일까. 숨이 갑실 것 같이 상큼하다. 더도 덜도 없는 순박함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곱고 예쁘다. 찬양도 아깝지 않은 단풍의 기품, 그저 고맙게 예쁘기만 하다. 먼 길 떠나려는 마지막 단장, 볕 바라기로 이슬을 떨치며 마지막 채비를 하는 단풍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때 묻은 오지랖이 단풍으로 물든다. 감겼던 눈이 뜨이고 닫혔던 귀가 열린다. 밤에만 들리는 벽시계 초침 소리를, 단풍은 세월 가는 소리인 줄을 알고 있었나 보다. 단풍 같은 마음으로 단풍 속을 걷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