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나를 뚫고 나오려는 욕망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나를 뚫고 나오려는 욕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19 15:52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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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시인
박우담/시인’-나를 뚫고 나오려는 욕망


잘 오르는
비법을 찾을 수 있을까
허공을 걷으며 오르는 빌딩
꼭짓점을 찾는 길이 고독하여 아슬하다
공중누각에 선 사람들
바람에 몰려 구름 떼가 된다
내려다본 도시
허공이 뿌린 고요에 납작 엎드렸다
한 칸 상자 안에 몸을 담은 사람들
희망 지수를 높이는 일은 상자를 넓히는 것
절벽을 오르듯 아찔하게, 온몸을 던지며 살아간다
꼭짓점을 오르는 스카이 빌딩
쭉 쭉 허공을 뚫고 솟는다
온 힘을 쏟아내는 도시, 통점을 잊는다
허공에 뜬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지, 층층이 흔들리며
잠시
떠나온 욕망의 도시를 잊은 채

(이진주의 ‘허공 도시’)

올해도 눈보라 속에 끄트머리가 보인다. 수능을 끝낸 학생들의 홀가분한 발걸음처럼 눈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체험한 것들이 번뜩이게 한다. 눈은 깃털이 되어 푸덕푸덕 떨어진다. 집에 돌아와 눈을 털어 냈다. 가슴에 늘 새를 키우고 있다. 하얀 머리카락 몇 올, 거울 붙들고 난발로 내린다. 눈은 작품 속의 고독한 존재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괴물이 된다. 이맘때쯤 ‘시우담문학 동인지’가 나왔다. 동인지를 짧게 소개하면 이러하다.

“코로나 팬데믹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합평회를 하면서 외롭고 쓸쓸한 길을 회원들이 함께 걸어왔습니다. 시의 화두를 푸는 일은 쉽지 않아 일희일비할 때도 많았습니다. 시를 계속 쓸 수 있을까? 지금의 시에서 한층, 시의 격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시의 길은 지난하지만, 시를 통해서 자기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략)… 이미지와 은유에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 사람 사는 일을 투영하고 인간애를 표현할 수 있는 시, 그런 진실을 찾고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시를 추구할수록 어렵고 막막하고 고뇌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합니다. 시를 쓰지 않는다고 비난할 자도 없고 쓴다고 해서 부가 채워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우리는 운명 같은 길을 갑니다. 계속 시를 두드리고 꿰뚫고 다듬어서 완성도 높은 시를 향하여 달려가는 시인이 되길 동인 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발간사)

초대 시인 코너는 강희근 시인을 비롯하여 이종만, 이재훈, 최희강, 안채영, 김성진, 석미화, 류천 시인 등이 참여하였고. 이상옥, 강외석, 김석준, 김남호의 평론도 선을 보인다. 회원 신작시, 소시집, 시인론, 시집 발간 및 등단 소식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오늘은 ‘시우담문학’에 실린 이진주 시인의 ‘허공 도시’를 소개한다. 이 시인은 계간 ‘시와편견’으로 등단하였고, 시집 ‘몰래 들여다보며 꼬집고 싶다’가 있다.

인간은 ‘욕망’을 위해 에펠탑을 세우고 집, 자동차, 명품 등과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추구한다. 사회적인 인정, 권력, 명예 등을 통해 ‘욕망’을 표출한다. 시 ‘허공 도시’에서 화자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도시’, ‘스카이 빌딩’, ‘욕망의 도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만 뜨면 경쟁인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출세를 위해 “잘 오르는/ 비법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도시마다 경쟁하듯 뻗어 오른 ‘빌딩’들이 있고, 정상에 오르기 위한 “길이 고독하여 아슬하다.” 각 개인의 성격, 가치관, 문화, 환경 등에 따라 욕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층 빌딩에 올라 조그마하게 보이는 자동차나 행인들을 보고 화자는 언제 추락할지 알 수 없음을 느낀다. ‘구름’처럼 상승 기류가 있으면 하강 기류도 있기 마련이다. ‘꼭짓점’에 도달하면 영원히 자릴 지키지 못한다. 언젠가 그 자릴 비워야 한다. 분노의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이진주는 인간의 삶은 ‘허공 도시’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라 느꼈을 것이다. 발버둥 치면서 계단을 오르지만, 어느 정도 성취를 한 뒤에 허무감에 젖어 든다. 경쟁이 경쟁을 부추기고 출세를 위한 투쟁은 인간을 점점 괴물로 만든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누구는 맨주먹으로 달렸고, 누구는 “허공을 뚫고 솟”다가 추락한다. 욕망은 괴물을 부르고 괴물을 자극한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우월감을 가진 자의 목소리도 들린다. 욕망은 “통점을 잊는다.” 나를 뚫고 나오려는 욕망은 은빛 음절이 되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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