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그때는
세상사는 이야기-그때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26 15:4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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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자/시인
백숙자/시인-그때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 찬 바람과 쌀쌀한 날씨에 몸은 자연히 움츠리게 된다. 어제의 시원한 물맛 같던 바람이 오늘은 몸을 해치는 적군이 된 것 같아서 몸은 반사적으로 기온과 맞서며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계절을 먼저 알아차리는 몸 생명의 신비스러움일까? “몸이 따시야 감기 걸리지 않지” 어릴 적에 늘 하시던 할머니 말씀이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며 문풍지로 둥지 섣달 찬 바람을 막아 주시던 할머니의 지혜! 문풍지 없는 방문이지만 무디어지고 있는 의식을 저절로 일깨워 주는 요즘이다.

옷이며 이불이며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또 있다. 감기 독감 예방주사도 잊지 않고 맞는다. 가볍고 따뜻한 옷과 모자와 목을 감싸주는 목도리 그리고 장갑과 마스크도 꺼내놓는다. 바람 부는 거리는 젊은이에겐 낭만이겠으나 노약자에겐 마냥 건강을 해치는 침입자일 뿐이다. 그늘을 만들어 주던 나뭇잎은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은행나무는 희망처럼 노오란 나비가 되어 허공을 날아다니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마지막 몸짓으로 곡선을 그린다. 그러면서 마침내 떨어진다. 발길에 벽돌 틈새에. 마치 지나간 모든 현상은 한 방울 진한 그리움이라는 듯이!

동네 병원에는 감기 독감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대부분 유모차에 의지한 노약자다. 이젠 자기 몸도 자기 스스로 운전하지 못하고 빈 유모차에 자신을 의탁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걸어온 길에 자신만의 무늬를 족적으로 남기며 최선에 최선을 하며 성실하였던 몸, 이젠 그 무거운 노구를 유모차에 맡긴 채 걸어 다닌다. 가볍고 쓸쓸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삶. 그 몸에 의지해 가정과 사회가 유지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몸을 지탱해 왔던 젊은 날. 다리는 휘어지고 허리는 굽고 의식은 몽롱하고 몸은 흔들거린다. 생각이 느려진다. 누군가 말했지 “정은 늙지 않는다”고.

나이를 먹으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기 일상을 꾸려가는 건 참으로 다행한 축복이다. 감사한 인생이겠으나 무심한 시간은 어디 그런가. 여기가 아니면 또 저기가 그러면서 병원을 유적지처럼 순례하면서 노년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우리는 모두 건강하게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고 싶은 소망과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바람은 한순간에 도깨비같이 뚝딱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지혜를 젊은 날 좀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면서 꾸준히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공감하는 그 말은 참 쉽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현실은 어디 그런가. 일상의 시간에 쫓기면서 종종거리다 보면 사실 제 몸은 뒷전으로 밀린다.

어릴 적에 할머니한테서 듣고 자란 말씀은 “겨울 무시는 동삼이다.” 늘 그러셨다. 무는 겨울에 먹는 인삼의 효능보다 좋은 보약이란 말씀이다. 밤마다 자리끼와 무 한쪽, 숟가락을 준비해 놓았다. 숟가락으로 긁어 잇몸으로 오물오물 넘기시던 할머니. 가끔 무와 생강을 넣어 삶아서 식구들이 물먹듯이 먹었던 기억이다. 그건 부모님이 만드는 그 시대의 감기 예방약이었다. 찬바람만 불어도 콧물을 흘리며 콜콜 대는 나는 먹기 싫어 야단을 맞으면서 먹곤 하였다.

겨울은 더 깊어질 것이다. 기온은 더 떨어질 테니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하면 좋겠다. 감기 독감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강하고 행복한 겨울을 위하여! 건강한 체력이 건강한 정신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런 연유였을까? 할머니는 피곤하니 좀 쉬겠다며 누우셔서 다음날 자는 듯이 가시었다.

모든 사람의 바람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100세를 누리는 것이다. 그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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