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내 인생의 봄날은(2)
도민칼럼-내 인생의 봄날은(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30 16:4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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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내 인생의 봄날은(2)

옛날에 한국전쟁 무렵에 태어난 세대는 지금처럼 장난감 하나도 변변치 못했다. 문방구에서나 완구점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은 바랄 수도 없었다. 이런 가게들도 면 소재지에 없을뿐더러 생각지도 못할 언감생심이었다. 그렇지만 돈 들이지 않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많았다. 제기차기, 연날리기, 썰매 타기, 팽이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이런 놀이 기구들은 모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장난감들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런 기구가 필요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도 넘쳐났다.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 놀이가 있고 땅바닥에 줄을 긋고 즐기는 조뽀놀이가 있었다. 이 중에서 단연 고지 뺐기와 조뽀놀이는 최고였다. 초등학교 가기 전 코흘리개 어릴 때부터 십 대가 지나도록 했으니 말이다.

먼저 고지 뺏기를 설명한다면 발가벗은 남자아이들만 하는 놀이다. 그때 고향마을 앞으론 섬진강 지류인 황전천이 흘렀다. 오랜 세월을 묵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숲이 우거진 동산에 기암괴석 아래로 연당소라고 불리는 소가 만들어졌다. 그곳엔 자라 바위, 말바위, 납작 바위 등 바위들이 물속에도 많았다.

어릴 때 올라서면 배꼽까지 잠긴 납작 바위와 자라 바위를 편을 나눠 고지로 삼는다. 각 팀은 수비조와 공격조로 나눈 후 상대방 고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고지를 지키는 수비들을 밀어낼 기회를 엿본다. 말하자면 전쟁 때 총으로 싸우지 않고 육박전으로 고지를 빼앗기고 탈환하는 거와 같다. 조뽀놀이와 고지뺏기 놀이는 참으로 격했다. 이런 놀이를 하며 놀았기에 고향마을에 친구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수영엔 이골나 있다.

이때 고지를 공격해 오는 적군과 서로 붙들고 버티고 밀어내다 보면 바위 아래 수심이 깊은 물 속으로 같이 빠진다. 물속에서도 서로 붙들고 늘어지다 보면 숨이 차게 되고 금방 지친다. 이런 격한 놀이를 하다 보면 뱃속에 점심 먹은 것이 금방 소화돼버린다. 이때는 물속에 잠수해 더듬이로 손바닥 크기만큼의 꺽지나 쏘가리도 잡아 올리곤 한다. 소금간도 없이 그냥 모닥불에 구우면 서로 많이 먹기 위해 싸우던 그때가 그립지 않은 친구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고지 뺏기 놀이는 물속에서 하는 놀이라 그렇다손 쳐도 조뽀놀이를 즐겼던지가 60년이 지난 요즘은 안타깝게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고향 떠나 진주에 산지만 해도 40년을 넘게 살지만, 조뽀란 놀이를 해봤던 사람은 고사하고 아예 무슨 놀이인 줄 아는 사람도 찾지 못했다.

조뽀놀이 종류는 땅바닥에 선을 그은 8자 모양이나, 오징어 모양이 있다. 그리고 사각 모양 안에 또 하나의 네모를 만들고 나면 통로가 만들어진다. 그러고는 모서리마다 원을 그려 방을 만든다. 네 귀퉁이마다 만들어진 방을 점령하려 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편을 나눠 서로 밀어내기를 하는 놀이다. 그때 우리는 붕알 조뽀(조포)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일본어인가 싶다. 우리말 이름이 있을 텐데 찾지 못해 아쉽다. 그때는 등교하면 수업 시작하기 전부터 땀을 뺀다. 운동장 중앙에서 축구공이 몇 개씩 굴러다니고 가장자리서는 으레 조뽀놀이 판이다. 힘을 써야 하는 격한 놀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즐겼었다.

그때 뒷산에 땔나무를 하러 가는 길목에 우리 집이 있었다. 대밭 숲이 찬 바람을 막아 주어 겨울에 따뜻해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 추수를 끝내고 겨울에는 놀리는 논배미였으므로 8자 모양 줄을 긋고 조뽀놀이에 빠지다 보면 점심 먹었던 배가 꺼져 출출해진다. 점심때 가족이 먹고 남았던 삶은 고구마 한 소쿠리는 친구들이 대들어 어느새 게눈 감추듯 해치웠었다.

그때 고향마을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논밭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짬을 내서 친구들과 즐기던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조뽀놀이를 비롯한 자치기 놀이와 못 찾겠다 꾀꼬리 등 그때 즐기던 놀이 들이 세월 속으로 완전히 묻혀 버리고 말았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지 아닐 수 없어 아쉽다.

아직 11월 중순이다. 올해는 겨울이 다른 해보다 일찍 찾아오는가 싶다. 내복과 패딩 조끼와 잠바를 껴입어도 추위가 몰려온다. 글이라도 한 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발이 시리다. 다른 날보다 일찍 안방에 누워 잠을 청한다. 초저녁잠이 많아선지 한숨 자고 나면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로 빠져든다.

못 찾겠다 꾀꼬리, 놀이하다가 연당소에서 고지 뺏기 놀이에 빠져든다. 곧바로 조뽀놀이가 이어진다. 이런 놀이에 빠져 있으면 다른 잡념이 사라진다. 이러니 초등학교 다니던 그때가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순 없다. 누군가가 나더러 내 인생의 봄날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나는야 서슴지 않고 그때였다고 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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