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아이의 몸 자체가 꽃이다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아이의 몸 자체가 꽃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03 17:24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우담/시인
박우담/시인-아이의 몸 자체가 꽃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
갈망하는 바람이 호수의 주름을 접었다 폈다
끓이며 증발하며 검게 졸아들고 있다
슬픔에 갇힌 말들이 가느란 뿌리를 뻗어 모감주나무처럼 쪽쪽
피를 빨아 먹는 곳
깊은 밤 신새벽에도 몽유병자가 되어 호숫가로 간다
말라 가는 바닥엔 타버린 세포들의 결정
토염이 버석이듯 속에선 단내가 났다
집을 나선지 오래, 낡은 기도문은 거기 앉아 있고 어둠이 벗어둔
새벽을 껴입은 몸은 차갑다
대사 없이도 기도는 자라고 무성영화처럼 호숫가를 맴돌 것이다
호수가 하늘을 품고 어린 사슴들이 목을 축일 때까지
저것들을 초원에 방목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풀려날 것이다
끝내 풀려나지 않을 것이다
가둬진 것들이 더 빨리 흐를 것이다

(최해숙의 ‘심장호수’)

갑작스레 추워진다. 겨울에는 눈길이나 빙판길에 운전하기 겁난다. 눈 내리면 운치는 있으나 운전자들은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힘들다. 이따금 출동하는 소방차나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린다.

오늘은 최해숙의 시집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에 수록된 ‘심장호수’를 소개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으면 화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심장에 산다”고 했을까. 어느 정도 긴장이 되면 이렇게 될까. 화자는 극한 상황까지 갔을 것이다.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은 피붙이의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녀나 손주의 아픔 그리고 말 못 하는 슬픔이 밀려올 때 ‘심장’에 산다고 했을까. “소유하는 순간 달아나기 시작하는 것, 가장 고요한 평온이면서 가장 불온한 불안, 내가 물일 때 잉크처럼 내게로 와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작품을 해석하는 건 독자의 몫이니 ‘시 맛보기’를 하겠다.

‘심장호수’는 할머니가 병원에서 입원해 있는 손자를 생각하며 쓴 것으로 생각한다. 신생아거나 아동일 때 더더욱 보호자는 마음이 아프다. 말 못 하는 신생아가 밤새 열이 오르고 울어댈 때 펄떡이는 ‘심장’을 ‘호수’로 빗대서 풀어가고 있다. 모니터로 보이는 심장은 운무가 끼인 ‘호수’처럼 보인다.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심장’일 수도 있고, 신생아의 ‘심장’일 수 있겠다. 보호자가 아이의 상태를 유리창으로 바라보며 심정이야 어디에 비교가 되겠는가. 할머니는 “갈망하는 바람이 호수의 주름을 접었다 폈다”고 말한다. 밤새 열이 오르는지 상태가 어떤지 대기실에서 가족들은 밤을 지새운다. 할머니는 병실에 있는 손자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손자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발만 구르고 있다. 놀란 ‘심장’은 끓이며 증발하며 검게 졸아들고 있다.” 일상에서 극히 긴장되거나 불안할 때 속이 바짝 마르며 ‘심장’이 검게 탄다. 고 말한다. “말라 가는 바닥엔” “타버린 세포들의 결정”된다. “슬픔에 갇힌 말들이 가느다란 뿌리를 뻗어 모감주나무처럼 쪽쪽/ 피를 빨아 먹는 곳” 충격이 너무 클 때 아무 ‘말’ 못하지만 ‘심장’은 펌프질을 격하게 한다. 온몸으로 피를 돌게하고 맥박은 빨라진다. 화가가 얼마나 걱정스럽고 불안하기에 깊은 밤 첫새벽에도 할머니는 ‘몽유병자’가 되어 호숫가로 가서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그토록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아이는 아프면 엄마를 먼저 찾는다. 엄마가 안 보이면 마냥 운다. 아이의 본능적인 울음이다. 어떻게든 아이를 안심시키면서 치료해야 한다. 아이의 아픔에 미미한 존재의 슬픔을 느낀다.예고 없이 닥치는 사고나 불행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가족이나 소중한 분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보호자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낡은 기도문은 거기 앉아 있고 어둠이 벗어둔/ 새벽을 껴입은 몸은 차갑다.” “대사 없이도 기도는 자라고 무성영화처럼” 화자는 “호숫가를 맴돌 것이다.” “어린 사슴들이 목을 축일 때까지” 기도하며 정성을 다하다 보면, 사고나 불행은 안개가 걷히듯 희망은 다가올 것이다. “사슴들이 초원에 방목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풀려” 나거나/ “끝내 풀려나지 않을 것이다.”

의료진과 보호자의 노력 끝에 아이는 앙증맞은 발을 움직일 것이고 할머니와 눈을 맞출 것이다. 이땐 아이의 몸 자체가 꽃이다. ‘심장’은 삶의 뿌리다. 완쾌한 아이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