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칼럼-‘최후의 바다-별은 떨어지고’
장영주 칼럼-‘최후의 바다-별은 떨어지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11 17: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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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국학원 상임고문·화가-‘최후의 바다-별은 떨어지고’

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63세로 후시미성에서 돌연 생을 마쳤다. 천하인(天下人)을 자처하며 일본열도를 손에 넣고 조선, 중국, 베트남, 인도까지 움켜쥐려던 히데요시였다. 그 광풍을 산산이 부셔버린 이가 무명이었던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이순신은 조선 침공 선봉 제1군의 지휘관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순천 왜교성에 가두어 명줄을 틀어쥐고 있었다.

세례명 아우구스티누스인 고니시는 가장 먼저 부산포에 상륙하여 가장 먼저 서울에 이어 평양을 접수한 일본군 최고의 맹장이다. 고니시는 공석이 된 일본 최고의 자리를 남에게 거저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무력을 온전히 보전한 채 귀국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순신의 뜻은 오직 하나, 고니시를 비롯하여 원수들을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장도’에 있는 적의 군량미를 빼앗아 오고 남은 것은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전투가 계속되던 중 11월 3일, 사도 첨사 황세득이 적이 쏜 탄환에 맞아 죽는다. 황세득은 이순신의 처 종형이었다. 여러 장군들이 조문하니 이순신은 “세득은 나라일로 죽었으니 그 죽음이 영광스러울 뿐이다”라고 하였다. 장군 자신도 늘 “나는 적이 물러가는 그 날에 죽는다면 아무런 유감도 없다”고 했다.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자 명 제독 진린은 대장 별자리의 이상한 징후를 본다. 진린은 이순신에게 무후 제갈량이 쓴 비책을 쓰라고 권한다. 그러자 이순신은 연명비책을 쓰기를 거절한다.

‘나는 충성심이 무후만 못하고,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재주가 무후만 못하여 세 가지 모두 무후만 못하니, 비록 무후의 법을 쓴다 한들 하늘이 어찌 들어줄 리가 있겠습니까?’ 이미 죽기를 각오한 조선 수군 지휘관의 담백한 대답이었다. 제갈량과 이순신의 시호는 똑같이 ‘충무’이고 54세의 같은 나이로 죽는다. 후대인들은 이순신이 제갈량과 능력이 혹은 같고 혹은 더 뛰어나다고 하였다. 제갈량은 주군인 유비로부터 모든 것을 다 지원받았으나 이순신은 오히려 주군인 선조의 시기와 위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적장 고니시의 뇌물을 받은 진린이 포위망을 풀어주자 적의 쾌속선 고바야부네 한 척이 사천 쪽으로 급히 사라졌다. 고니시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시급히 요청하는 배였다. 과연 시마즈는 고성, 남해의 300여 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캄캄한 밤을 타 순천을 향해 노량 물목을 쓸며 내려온다. 앞뒤로 기습받을 것을 예상한 이순신은 ‘그날’임을 직감한다.

자정 무렵, 대장선에서 무릎 꿇고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아 하늘에 고한다. “오늘 진실로 죽기로 결심했사오니 하늘은 반드시 왜적을 섬멸시켜 주시기를 원하나이다.”(今日固決死願天必殲此賊) 고집불통의 54세 조선 수군 장수 이순신은 적군을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이미 금석처럼 다지고 다져 온 터이다. 육신은 사라지고 다만 뜻만이 대장 검처럼 빛나고 있었다. 장군이 간절한 축원을 마치자마자 문득 큰 별이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02시경, 일본 수군의 선공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승리보다는 적을 멸절하는 철저한 응징이 장군을 비롯한 조선 수군 전 함대의 유일한 목표였다. 남해 노량의 관음포 전투는 근접전을 적극 회피하는 평소의 이순신과는 정반대로 뒤엉켜 부딪치는 혼전의 혼전이었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추격하며 섬멸하는데, 적의 포병이 배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을 향해 일제히 총을 쏘았다.

겨울 바다가 밝아 오는 아침 08시경 첨망대 앞 바다에서 장군은 최후의 적탄을 맞았다. 장군은 “전투가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곧 절명한다. 죽음 앞에서도 오로지 싸움의 결말만을 도모하는 이순신의 최후의 명령이자 조선 수군의 다짐이었다. 큰아들 ‘회’와 조카 ‘완’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눈물을 삼키며 북을 울리며 독전기를 휘둘렀다. 12월 16일(양력) 정오경, 일본 수군의 참패로 전투는 마무리되고 7년에 걸친 임진왜란도 돌연 끝이 났다.

장군이 몸 바꾼 고현면 차현리에는 이락사(李落祠)가 세워지고 비각에는 대성운해(大星殞海)라는 현판이 걸린다. 이순신의 목숨이 떨어지고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다. 노량의 겨울 바다는 이순신이 장군에서 영웅으로, 영웅에서 성웅으로 거듭거듭 태어난 최후의 바다가 되었다. 최근 고려의 역사를 주제로 한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방영되고 있다. 바쁜 연말연시이지만 선열들의 국난극복의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힘은 시공을 초월하여 겨레의 핏줄에서 핏줄로 한결같이 이어져 갈 것이다. 위기를 맞은 인류의 운명도 결국 우리의 DNA에 녹아든 홍익인간 철학으로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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