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그들 때문이다
도민칼럼-그들 때문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14 17:2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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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그들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해방 맞은 조국 땅에 내리면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에게 호소했었다. 이는 또다시 일본 같은 외세에 침략당해서는 아니 된다는 뜻일 테다. 이와 같은 연설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하면서 남과 북으로 나뉘지 않게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찍이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일상생활을 했고 항일 운동을 했던 민족주의자였다.

독립운동을 펼치다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타국을 돌며 일제와 싸우다 돌아왔다. 그리고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반일 감정을 드러냈다. 대마도 반환 요구를 한두 번이 아니란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1월에는 평화선을 설정해 해양주권은 우리에게 있으며 동해(한국해)라고 선언했다. 남과 북은 한국 영토라고 세계에 선언했으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고히 했었다. 그런데 똥 누러 갈 때 맘과 나올 때 맘이 다르다는 말처럼 어쩌다가 국민으로부터 안 좋은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혀버렸는지 안타까운 맘 금칠 못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유일하게 대마도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었다. 그런데도 일부에선 친일 대통령이라 칭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친일 청산을 해야 했었는데 미 군정에서처럼 친일파 우대정책을 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애석하게도 외세에 의해 부모형제며 같은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채였다. 끝내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말았다. 둘로 흩어진 채 통일 조국을 소망하며 75년을 고통 속에 살았다. 필자로선 철조망으로 가로막은 당사자들이라야 걷어낼 수 있으리라 보지만, 그들은 아직 나 몰라라 하는 것처럼 보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남과 북 7천7백만과 천만 이산가족이 슬픔과 고통 속에 살고 있음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의 고통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155마일을 가로막은 당사자들은 이제는 철조망을 걷는 일에 노력해 달라며 간절히 부탁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나고도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 두 동강 나고 제주 4·3 사건이 나고 여순사건에 이어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70년 동안이나 통일된 조국을 이루지 못했다.

남북분단은 미국이나 소련, 그리고 중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본에 오랫동안 지배받지 아니했었다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겠느냐고 묻고 싶다. 일본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으로 인한 비극 속에 살지 않았으리라.

이처럼 남북이 총을 들고 대치하는 비극은 일본이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을사늑약을 체결 당했던 때를 거슬러 올라가 40년 이상을 식민지 생활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국력은 강해져 있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기질을 볼 때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 있었을 테다. 소련이나 미국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 날 일은 만무했으리라 본다. 이에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만들어진 비극의 동기부여는 일본이 제공했다고 거듭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서 떨어져 나간 섬나라인 탓에 일본은 침략성이 일찍이 싹튼 나라였다. 오랜 옛날인 삼국시대와 고려 때에도 우리나라에 바다를 인접한 고을들을 괴롭히며 노략질을 해왔다. 그러더니 임진왜란을 일으켜 장장 7년 동안이나 전국을 초토화했다. 재산피해는 차치하고라도 천하보다 귀한 인명피해만 해도 조선 인구의 절반 가까이 잃었다는 문헌도 있고 3분의 1을 잃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들은 조선 사람들을 누가 더 많이 죽였는가를 경쟁했고 수급을 취해 그 공을 가늠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씨를 말릴 심산이었다. 수급(首級)을 취해 제 나라로 보내다 보면 부패 되며 운반하기가 불편했다. 코와 귀를 베어 소금 간을 해 그들의 나라로 가져갔다. 그들이 섬기는 신사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보고 즐겼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국인의 코와 귀 무덤이 존재하고 있다 하니 천인공노할 만행을 그들은 저질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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