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흥남철수작전 희망의 크리스마스 항해(1)
기고-흥남철수작전 희망의 크리스마스 항해(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20 17:3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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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주/전 국방정신전력원 전문연구원
조우주/전 국방정신전력원 전문연구원-흥남철수작전 희망의 크리스마스 항해(1)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넘어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그 결과,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 38선을 넘어 10월 19일에는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을 탈환했다. 이렇듯 우리 군이 파죽지세로 북진하며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까지 다다르자, 한반도 통일은 눈앞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10월 25일, 중공군 공세 작전이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하거나 그들의 포위망에 고립됐다.

11월 24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 주력이 아직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크리스마스 전까지 전쟁을 끝낸다는 목표로 ‘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미 한반도에 투입돼 조직적 지휘체계를 갖춘 중공군은 약 30만 명에 달했다.

11월 25일, 중공군 2차 공세가 시작됐다. 중공군은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해 국군과 유엔군의 빈틈을 노려 기습 공격했다. 예상치 못한 중공군 공격에 동부전선의 미 10군단과 국군 1군단은 퇴로가 차단당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해 있던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에 포위돼 병력 1만2000여 명이 전멸될 위기에 처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맥아더 장군은 11월 28일 동부전선 부대에 ‘함흥과 흥남 해안교두보 지역으로 집결할 것’을 지시했다. 이튿날에는 장진호 일대에서 포위돼 있던 미 해병 1사단에 철수 명령도 하달했다. 미 해병 1사단은 철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장진호에서 흥남까지 110여 km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장진호 일대는 고도가 약 1000m가 넘는 산악지형으로, 11월임에도 날씨는 이미 한겨울이었다. 특히,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 참호를 파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땅이 얼어,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 총탄에 노출된 채 싸워야 했다.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을 돌파할 때에도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미 해병 1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전의를 고양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 해병 1사단은 곳곳에서 몰려드는 중공군과 사투를 벌인 끝에 전사한 전우의 시신까지 수습하며 12월 11일 흥남에 도착했다. 이들은 중공군 7개 사단 병력을 돌파하며, 흥남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 중공군의 진출을 약 2주간 지연시켰다. 이로써 함경북도 지역으로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흥남으로 집결해 차후 작전을 준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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