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연구 대상
아침을 열며-연구 대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01 14: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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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연구 대상

한때 우리 세대들(50년대 생, 70년대 학번) 사이에서 ‘연구 대상’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었다. 뭔가가 좀 특이하면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나라가, 이 국민이 총체적으로 ‘연구 대상’이다. 하여간 특이하다. 긍정적으로도 그렇고 부정적으로도 그렇다.

긍정적인 것들을 보자. 손바닥만 한 작은 나라가 경제력-군사력-문화력을 위시해 종합국력이 세계 6위권이라고 한다. (US 뉴스&월드리포트) 평가기관별로 차이는 있지만 느슨하게 잡아도 10위권 언저리에 있다.

한류 등 문화력은 부분 부분 세계 1위도 이제 드물지 않다. 스포츠 분야도 적지 않은 금메달이 그걸 보여준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해방 직후 1940년대/50년대와 비교하면 ‘기적’이라는 말도 하등 과장이 아니다. 그 핵심에는 뭐니 뭐니 해도 ‘인재’가 있다. 아마도 ‘교육’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현상이고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특급의 인재들이 이 나라에는 실제로 적지 않게 있다. 각 분야에 포진해 있다. 일일이 거명하는 것이 번거로울 정도다. 그들이 이 세계 6위권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면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참 기가 막히게 그 정반대가 동시에 있다.

부정적인 것들을 보자. 매체의 기사를 검색해보면 곧바로 그 부인할 수 없는 사례들이 확인된다. 아마 가장 문제적인 나라의 순위를 매긴다면 이 나라는 최소한 세계 10위권을 훌쩍 넘길 것이다. 누구나가 다 아는 자살률 세계 1위, 비혼-비출산-인구감소율 세계 1위, 등이 부인하고 싶은 우리의 입을 곧바로 다물게 할 것이다. 연구 대상이다. 아니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 이미 실제로 연구 대상이 되어있다. 각종 연구 결과도 심심치 않게 매체에 보도되고 있다. 이런 건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세계의 바닥을 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항목에서 아마도 세계 최상위권에 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알다시피 종합지표에서 세계 최상위권인 중국과 일본을 되놈 왜놈하고 경멸하는 세계 유일의 민족으로 이미 소문나 있다. 저들의 압도적인 실력을 무시-외면하는 그런 짓거리를 제 3자에게 조롱-경멸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그만한 그 뭔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현실적으로 우리는 저들과의 격차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거 없는 자부도 또한 연구 대상이다.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것은 현실의 제반 문제들이다. 무작위로 몇 가지를 나열해보자. 이 나라는 동서 남북 상하 좌우 남녀 노소 전후 원근... 거의 모든 인간 단위가 갈가리 찢어진 분열상을 드러내고 있다. 극한적-무조건적인 좌우 진영대결은 이미 망국적이다. 그 균열은 심지어 가족, 친구 사이까지도 벌려 놓는다. 가치의 집중도 심각하다.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머지는 일단 모두가 루저로 취급된다.

우수한 학생들은 그 서울대마저도 포기하고 좋다고 하는 ‘의대’에 인생을 건다. 의사는 기득권자가 되어 행복을 독과점한다.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이 없다. 연구 대상이 아니랄 수 있겠는가. 문사철 등 인문학의 몰락도 빠질 수 없다. 독서 시장의 붕괴도 그렇다. 이런 건 ‘인간되기’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일각에서는 백해무익한/천박한 책과 SNS의 언어들과 영상들이 거의 광적으로 제작-유통-소비된다. 인생 최고의 가치를 묻는 국제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국가가 ‘가족’을 첫 번째로 꼽았는데 유일하게 우리 한국만이 ‘돈(물질적 풍요)’을 꼽았다고도 한다. 이런 것들만 해도 이미 보통 문제가 아닌데 이것들조차도 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연구는 ‘문제해결’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에게는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세계 최고’라는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세계 최고의 ‘질적인 고급국가’를 지표로 삼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야기는 100번을 거듭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금의 우리가 걸어야 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 피히테의 심정으로 한국 국민에게 고한다. 반성하라! 문제가 너무 많고 너무 크다. 우리는 지금 정말 정말 연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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