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당문노(耕當問奴)
경당문노(耕當問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4.29 1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숙/시인

명심보감에 “일을 만들면 일이 생기고 일을 생략하면 일이 생략 된다(生事事生省事事省)고 했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과의 역학관계를 어찌 이리 단순명쾌하게 이 한 문장으로 정의를 했을까. ‘생·사·생(生·事·省)’ 이 석 자를 가지고 이 안에다 논문 한 편 아니 책 몇 권 분량의 우주적 비밀을 담아내다니! 여기서 한자의 매력과 한자를 쓴 우리 선현들의 그 품격까지 재발견하게 된다.

반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말에서 품격을 잃어버린 지가 오래 되었다. 특히 선거철이나 청문회 장면을 보면 가히 그 절정이다. 게다가 ‘강남스타일’이나 ‘젠틀맨’의 인기가 말해 주듯이 대중의 관심 또한 노랫말의 서정성보다 오직 시청각적 감각과 온몸이 흔들거리는 흥분된 리듬에 있으니 명심보감이나 사자소학의 이런 경구(警句)는 박물관 한쪽 구석에 무더기로 처박힌 깨진 토기조각만도 못한 형편이 되었다.

말과 글이 이 모양이다 보니 약속이나 공약도 헌신짝이 된지 오래다. 개성공단 폐쇄로 잔류했던 임직원들이 마치 피난민 행렬을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대하자니 선물 받은 새신의 색상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발에 한번 껴보지도 않고 바로 내다버렸다고 자랑하던 아이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차량 위는 물론 운전석 앞 유리창의 시야 확보가 어렵도록 짐을 실은 채 도라산길로 달려야했던 당사자들의 그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6·25가 뭔지 모르는 내가 TV 뉴스로만 잠깐 봐도 눈물이 흐르는데 하물며 관계자나 실향민의 그 아픔이랴!

아베의 혈통도 혈통이지만 남북 간에 긴장이 이렇게 고조되니까 이들 내각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반복이다. 일을 만들면 일이 생기는 법이다. 우리와 중국이 그토록 줄기차게 반대를 해도 저들이 결사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저의를 우리가 알아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 상황이 이런 판국에 진주의료원 폐원이냐 폐원 철회냐를 놓고 진주시민은 물론 경남도민과 국민의 뜻이 또 양분되어 있다. 이런 일들은 생략되었으면 더 좋았을 일이 아닌가? 개성공단 폐쇄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도 진주의료원 폐쇄 명령에도 그 중심에 관계된 사람 즉 당사자들의 뜻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들과는 무관한 힘 있는 몇 사람의 그 힘과 이념과 계산과 정략이 더 앞서 있다. 만사가 이것이 문제다.

홍지사와 경남도는 맨 처음 진주의료원 폐쇄 첫 번째 이유로 누적된 적자로 인해 지속적인 경영불가를 내세웠다. 그러다 이에 대한 반론이 거세지자 병원장 위에 군림하는 귀족노조 강성노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의료원 폐쇄 논거로 병원노조 활동을 들고 나왔다. 도지사, 병원장, 노조위원장의 힘의 크기는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이는 비교대상도 아니다.

단, 대통령도 도지사 노조위원장 다 표를 얻어서 된 자리다. 몇 표 더 얻어 당선이 되었다고 전권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다수결원리가 항상 좋은 결과만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문가 소수의 의견이 더 나을 수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한다. 경당문노(耕當問奴)라고 했다. ‘밭가는 것은 노비에게 물어라’는 말이다. 양반이 제 아무리 다 잘해도 밭을 가는 일은 노비만 못하는 법이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