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신년의 다짐
진주성-신년의 다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02 17:01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신년의 다짐

신년 인사 문자가 바쁘게 오간다. 한 해 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제일 많이 받고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일일이 망설였다. ‘고마웠다’라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부끄럽다.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고 더러는 답을 주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잊지 않고 있어 새해 인사를 보내오는 것이고 미워하지 않아서 답을 보내온다고 생각하면 고맙고도 겸연쩍다. 해가 바뀔 때마다 덕담을 나누면서 과연 나는 누구이며 상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영악하다는 소리는 안 들은 것 같은데 몹쓸 사람은 아닌지 아니면 나이 든 사람이 경망스럽게 보이지는 않는지가 제일 신경이 쓰인다. 설 자리 앉을 자리와 할 말과 안 할 말은 철저하게 가리자며 수시로 마음을 다잡지만 내 나름일 수도 있고 사람마다 평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서다.

젊은 날에, 보통 이상으로 나설 만큼 나섰기 때문에 미련도 집착도 없어 예순을 넘기며 모질게 다짐한 것이 성현들이 남긴 유훈을 따 오거나 혹은 사자성어를 인용하여 신년 화두로 삼았으나 언제나 공염불로 끝이 나서 일흔을 넘기고부터 아예 말부터 쉬운 ‘나잇값 하자’로 화두를 바꿨다.

절제니 겸양이니 하는 깊은 뜻도 염두에 두지 말고 그저 없는 듯이 있으며 무던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한 해도 탈 없이 무난하게 넘긴 것 같다. 우쭐거리지도 말고 껍죽거리지도 말며 남에게 어떤 티를 내는 존재가 아니기를 노력했다.

이제는 경륜이 인정받는 시대도 끝났다. 역전시대(逆轉時代)다. 아날로그는 전설이 되었고 5G의 상용으로 가상현실을 실현하는 세대들이 아바타를 이용한 메타버스 시대를 맞았다. 이들 세대는 제자가 스승을 앞지르고 신입이 선임을 능가하여 기성세대의 축적된 기술이나 능력이 무력화되어 구세대가 신세대 앞에 내놓을 것이 없게 바뀌었다.

가상을 현실화하며 인공지능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신세대는 혼자서도 잘하니까 선배인 장년 세대까지 밀리는 상황에서 노년 세대가 나서거나 티를 낸다는 것은 부질없을 짓이다. 거역할 수 없는 변화와 변천에 의한 역전시대를 맞아 뒤에서 밀어주고 응원하며 나잇값을 해야겠다. 문명의 쾌속 질주에 거침없이 내달리는 젊은이들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 우쭐거리지도 말고 껍죽거리지도 말며 나잇값 하자며 신년 다짐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