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희망의 불빛이 보인다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희망의 불빛이 보인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07 13:1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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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담/시인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희망의 불빛이 보인다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교향곡

꿈이 젖는다
목까지 차오르던 그리움은
길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질퍽한 꿈에 달라붙는다

하프를 타듯
비를 켜는 구불구불한 골목
몽유병 환자처럼 안개를 덮어쓰고 새벽을 기다린다

뭉치면 어디론가 달려야 하는 슬픔처럼
저수지를 넘은 빗물은
가슴 한복판으로 떨어진다
소용돌이치는 꿈

그치지 않는 빗소리
죽음의 속삼임으로 감미롭다
윤회가 끝난 그곳에 잠들고 싶은
백색소음

(김승의 ‘비를 켜다’)

진주시가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문화예술은 인간의 창조성과 표현력을 발휘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K-기업가정신으로 성장하는 문화도시 진주’의 미래가 기대된다.

오늘은 김승 시인의 ‘비를 켜다’를 소개한다. 시집 ‘속도의 이면’에 수록된 작품이다. 김 시인은 계간 ‘시와편견’공동 주간을 맡고 있다. 경북 봉화 출신인 시인은 왕성한 시작 활동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시집을 받아 들고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교향곡”이란 첫 줄에 숨이 막혀 오랫동안 그 페이지를 붙들고 있었다. 시인은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생명이 있는 건 모두 죽는다. 자명한 일이다. 시인이 말하는 교향곡은 무엇일까. 김 시인이 수도자처럼 죽음을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파고들수록 궁금해졌다. 좋은 시는 이렇게 독자를 붙드는 매력이 있다.

김승은 나는 하늘도 업신여기는 시인이다. 달아나는 문장을 쫓아 새벽까지 잠 못 들고 여백이 있으면 끊임없이 써나갈 수밖에 없는 게 시인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교향곡은 다양한 악기와 음악적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여백의 악보 위에 숱한 길이 나 있다. 가는 길이 서로 다르고 높낮이가 다르다. 가보지 못한 길이 얼마나 두려울까. 가족, 친구, 일, 취미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개인의 삶을 형성한다.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교향곡이라면 지금은 몇 번째 악장일까. 음표 하나하나 은밀하고 신성한 시간이다.

우리는 현실을 잊고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선다. 비를 켜는 익숙한 ‘골목’은 안도감과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비 내리는 골목에는 지나간 이들의 숨소리 들리는 듯하고,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와 애환이 떠오른다.

하프를 타듯 빗방울 소리는 행인의 가슴에 쌓인다. 비는 다른 악기와 음악적 요소가 어우러져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연주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즐거움, 슬픔, 사랑,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땅거미가 떨어질 때 감정의 “저수지를 넘은 빗물”은 가슴 한복판으로 떨어진다. 화자는“안개를 덮어쓰고” 꿈이 바스락대는“새벽을 기다린다.” 진정한 새벽은 오고 있을까. “그치지 않는 빗소리”는 시인의 내면의 소리다.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기쁨과 슬픔이 다가올 때 있다. 김승은 ‘네팔 학교 지어주기 운동’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후원하고 있으며, 문화예술단체에도 그의 손길이 묻어 있다. 이 또한 신성한 시간이라 말할 수 있겠다.

죽음은 아무도 가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일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다. 얼마나 두려울까. 어둠 속에서 불안이 고조되듯, 경험해 보지 못한 연주에 몹시 긴장된다. 화자가 죽음을 거론하는 건 삶을 갈구하는 역설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치지 않는 빗소리/ 죽음의 속삭임으로 감미롭다/ 윤회가 끝난 그곳에 잠들고 싶은/ 백색소음”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비를 죽음의 속삭임으로 보는 시인의 직관력이 돋보인다. 그 속삭임이 감미롭다고 말한다. 달관한 수도자처럼

김승은 주변의 아픔에 따스한 눈길을 보낼 줄 아는 소금 같고, 등대 같은 시인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아가는 것일까. 사유의 깊이를 더해 백색소음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치열하게 작품을 써온 시인은 빗소리도, 빈곤의 아픔도, 죽음의 속삭임도 백색소음으로 승화하고 있다. 작은 빗방울 하나가 삶을 파고든다. 시간을 관통하는 등대가 보인다. 희망의 불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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