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격세지감(隔世之感)
진주성-격세지감(隔世之感)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18 14: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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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격세지감(隔世之感)

흔히 흐르는 세월을 두고 화살에 비유하고,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는 말도 있다. 고달픈 사람들은 일각이 여삼추라고도 하니 똑같은 세월을 살면서도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으니 천차만별이다.

늘 하는 노인들의 말이지만 해방과 6.25를 겪은 세대들은 참 어려운 시대를 살았다. 요즘 세대들은 그때를 회상하면 꼰대라고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들의 희생적인 삶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한 조국이 있는 것이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고, 전쟁 후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엔 미국에서 우유가루 강냉이 가루를 큰 드럼통에 구호물자라고 보내왔다. 우리들은 1되 정도씩 배급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생 가루를 퍼먹고 온 얼굴이 우유가루 범벅이 되어 서로 마주보며 웃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0년이다.

이러한 시대를 농촌에서 살았던 친구들이 20대 말에 동갑계를 모아 어언 50년을 이어오고 있다.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다닌 사람은 밥에 미(米)처럼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데 모두가 순수한 친구들이다.

처음 동갑계를 창립할 때 필자가 회칙을 초안하면서 “우리는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들로서 오직 친목하고 동고동락할 것이며, 학력이 높건 낮건, 재산이 있건 없건, 잘났건 못났건 일체 따지지 않는다고 정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고, 30여 명이 넘던 친구들이 이제는 먼 길 떠나고 활동할 수 있는 친구가 10여 명으로 줄었다.

지난 1월 초 정기총회를 했다. 부부 동반으로 20여 명이 모였다. 집행부에서는 오리고기 닭고기를 푸짐하게 준비하고 떡도 사고 과일도 샀다. 쩨쩨하게 궁상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당에서 하는 모임은 미리 많이 시킬 것이 아니고, 먹어보고 모자라면 추가로 더 시켜도 충분한 것이다. 입에 풀질도 못하고 어렵게 살았고, 그 지옥 같은 보릿고개를 넘어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비닐하우스나 과수원을 하여 연 수입이 몇 천만 원이 되니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두려운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다.

어디 가서 큰소리도 쳐 보고 싶고 자랑도 해 보고픈 마음이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한풀이 하듯 쓸데없는 낭비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보고만 있다가 필자는 헤어질 때 “친구들의 기분은 이해한다. 더 먹고 싶은데 돈을 아끼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거의 반이나 남겨서 개 준다고 싸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자제했으면 하고 쓸데없이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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