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일년 양식
도민칼럼-일년 양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24 12:5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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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일년 양식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자기 삶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이든 어른이고 청년이고 일만 하다 죽기를 원하는 이는 없다. 돈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는데 마음들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암도 완치되는 세상에 우울증은 완치가 없다. 몸이 무너지면 수술로 약으로 해결하지만 마음이 무너지면 약으로만 되지 않는다. 9세에서 24세 사이의 사망률이 사고사보다 자살률이 훨씬 앞선다고 한다. 몸보다 마음이 힘들지 않은 곳을 찾으면서 귀농 바람이 불었다.

그즈음 우리 학교도 만들어졌다. 귀농 귀촌한 이들과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취미를 배우고 함께 하면서 결속도 다지고 소통도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도시의 사람들이 주말농장처럼 주말학교를 원하면서 지리산행복학교가 생기고 지금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도 2월 1일부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달에 한 번, 주말에 다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모집이 시작된다. 다음카페를 검색하면 학교 자료를 볼 수 있는 사이트가 나온다. 매년 8개 반 이상을 운영해 왔는데 올해는 13개 반이 생겼다.

신규반으로는 요즘 지구와 접지해서 몸과 마음의 기운을 얻는다는 우리나라 발박사 1호 김수자 교수의 맨발 걷기반, 그냥 무작정 걷는 것은 더 위험할 수 있어서 잘 알고 걸어야 한단다. 비가 많이 오는 열대우림의 기우를 가지게 된 우리나라에 적합한 건축양식인 목조 주택 짓기반은 꿈이 있는 집의 김경식 대표가 맡고 도편수 김민성 선생은 지리산의 고택을 돌아다니며 한옥의 양식과 문화를 알려주는 한옥 여행반을 한다. 마음 살림에 딱 맞는 춤 명상반은 김명자, 김나원 두 선생이 맡아 우리의 머리를 식혀줄 것이다.

우리 학교의 인기반 숲 샘 최세현 선생의 초록 걸음반은 전국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오다보니 일찍 마감이 된다. 화려한 강사진이 매달 다르게 와서 숲 기행을 하는 산야초 반도 사박사박 걸으며 나무와 풀과 동물들을 알아간다. 초보 산악인을 위하여 지리산 절경을 다니는 지리산 풍경(산행)반도 지리산 산악인 전승수 선생이 같이 다녀 안전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도자기를 만드는 이미소 선생님의 도자기공예반, 소리 한 자락을 통하여 자기를 표현하고 흥겨움을 갖는 소리꾼 서은영 선생의 풍류(국악)반, 지리산 하동 하면 그냥 넘길 수 없는 녹차 홍차를 요즘 입맛과 멋으로 차려내는 민종옥 선생의 티 블랜딩반, 차박, 캠핑이 대세지만 무작정 나설 수 없는 길을 처음부터 알려주는 노현재 선생의 아웃도어 캠프반, 문학의 대세인 디카시반에서는 이원규 시인&사진가에게 글과 사진을 함께 배우고 본격적인 사진은 지리산 속살을 이른 아침 걸어가 찍는 사진 특별반의 박태진 선생님이 일 년 쉬고 다시 오셨으니 카메라 없이 휴대폰만 있어도 된다.

정부의 지원 없이 하다 보니 일 년 수강, 공연지원비로 25만 원을 받지만 부부, 가족은 할인도 되고 일 년에 세 번 입학식, 축제, 종강식에서는 식사도 제공하고 숙소도 지원하기에 수업료, 교통비, 식비 말고는 큰돈 안 드리고 다닐 수 있다. 학교를 후원하는 여러 마음들이 있어 가능하고 일박이일 수업해도 작은 강의교통비나 공연비만 받는 교사들이 있어 가능하다. 교무처도 상시 운영보다 그때그때 작은 활동비만 받고 봉사를 한다. 그래서 단순히 기능을 배우러 오기보다 마음을 나누러 오라는 단서를 내민다. 입학 조건은 ‘열린 마음’이다. 혹은 ‘열고자 하는 마음’이다. 반별로는 많은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 내성적인 이들도 그 반 안에서 잘 어울리고 있으니 사람을 만나는 일에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혼하기 전 다녀보자, 하고 오셔서 잘 화합해 가신 분도 있고 죽으려고 왔다가 적당히 어울리는 재미에 나이 들어 진실한 친구를 만났다고 좋아하는 분도 계신다. 다니다 일상의 바쁜 일로 못 다니는 사람도 언젠가 다시 다닐 거라는 희망으로 학교 문자를 받는다는 답 문자를 받으면 이 일을 하는 피곤함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렇게 지리산의 기운으로 서로 다독이고 버티며 간다. 이제 일 년의 먹을 양식보다 마음의 양식을 챙기는 일을 하셨으면 한다. 한 달에 한 번 여행 삼아 와서 지리산을 다 가져 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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