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단상-산골의 겨울
전원생활의 단상-산골의 겨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25 12: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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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원/수필가
공성원/수필가-산골의 겨울

우주는 끝이 없다. 과학의 발전은 일반인에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보이저(Voyager)호가 1977년 발사되어 시속 약 6만km(지구 둘레 약 4만km)로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를 비행하고 있다. 이미 4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지구와의 거리가 약 250억km이며 이 거리에서 지구와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다니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난다.

최근 핫뉴스(hot news)는 제임스 웹(James Webb) 우주 망원경이다. 2021년에 발사되어 태양과 지구 사이를 오고 가며 우주의 초기에 관한 연구, 새로운 행성계의 발견, 은하계의 진화 등 인간의 무한한 우주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을 아주 일부 해소를 시켜주고 있다. 세상일이 다 그러하나 우주는 알면 알수록 깨닫는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이 또 있다. 자연이 그렇다.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자 삶의 주체이며, 지속해서 변화하고 진화되어 가고 있다. 물리적으로 우주의 크기나 시간의 무한성 개념에서 시작과 끝이 없는 연속체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이고 물리적인 관점에서, 시작과 끝이 없는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우주에 비해 잠시 흔적을 남기는 희귀의 생명체인 인간에게 겸손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산골의 겨울은 참으로 길다. 달력의 겨울이 아니라 일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이곳 악양 농촌에는 이른 봄에 고로쇠 채취를 시작으로 취나물, 고사리, 머위, 두릅에서 가을에 대봉감 수확을 끝으로 농사일이 줄어들고 동결과 함께 긴 겨울잠을 자듯 육체의 휴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계절은 칼로 두부를 자르듯 할 수 없다. 겨울 속에 봄이 있다. 낙엽이 떨어진 그 자국에 자세히 보면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시들어 흔적도 없는 수선화도 땅 밑에서 봄을 기다리며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인간도 동물도 크게 보면 같은 원리를 대입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이 씨를 남겨 영원에 이르듯 사람도 후손을 남겨 대를 잇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죽는 것이 죽는 게 아니라 나의 유전자는 지구 어디엔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산골의 겨울을 즐기며 좋아한다. 동토에서 부끄럽게 혀를 내미는 복수초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잡초와의 전쟁, 내 손길을 기다리는 정원의 자식들, 오고 가는 많은 손님 틈 속에서 육체는 지쳐가고 10월쯤에서야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로 수고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겨울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게 되어 감사한 일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 중에 예측건대 우주의 대 격변기가 오면 제일 먼저 사라질, 경쟁력이 가장 약한 생명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현존의 인간일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는 제일 큰 이유는 의학의 발전이라 본다. 물론 과학이 발전되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개선되고 영양학적으로 풍족한 삶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의학의 발전은 생명의 연장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최근에 가까운 지인이 어깨 목디스크로 여기저기 좋다는 명의는 다 찾아다닌다. 결국 의술도 과학의 힘을 빌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상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자연은 발가벗긴 나인(裸人)와 같다. 무성하게 우거져 보이지 않던 속살도 겨울이 되면 숲속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었는지 훤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의 산길을 산책하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오두막집이나 토굴이나 토종벌통이나 은밀히 숨겨둔 송이버섯 식별표도 눈에 띈다. 마치 몸속을 스캔(Scan)하듯 하다.

도시는 온통 회색이다. 회색이 사람 눈에 무난해서일까. 거부감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타협의 색일까. 최근 들어 지자체에서 푸른 옷을 입혀 보려고 도시 정원을 만드느라 부산이다. 마치 생존의 터전에서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 자연의 색을 칠해 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처음부터 자연 친화적인 도시를 디자인하고 정원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여유가 있는 삶의 시간이 부재한 탓일 것이다.

산골의 겨울이라 아주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노동의 강도가 훨씬 낮아지는 것이다. 나름 할 일이 많아진다. 자신에 집중할 돌아볼 시간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농촌의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복지 시설을 확충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산길을 산책하던가 동네 헬스장으로 간다. 각종 최신 운동기구들이 즐비함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땀을 흘리고 목욕탕에 가면 아주 저렴하게 온몸의 피로를 씻겨 낼 수 있다. 쓸데없고 부질없는 세상살이 걱정도 물이 되어 내려간다.

마음 내키면 마을 도서관으로 간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한적하게 그날의 신문이나 잡지를 보고 평소 보고 싶었던 서적도 빌린다. 시간의 여유가 더 있으면 영화도 한 편 보고 나면 해거름이 산에서 내려온다. 집밥으로 저녁을 간단히 하고 빌려온 책을 뒤적이면 하루의 끝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상의 루틴(Routine)은 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농촌의 감미롭고 달콤하고 비밀스른 맛이다.

태양이 뜨거운 한여름의 전투적인 삶을 위해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는 겨울이 이곳 시골 산골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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