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 -꽃값이 금값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 -꽃값이 금값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31 11:0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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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꽃값이 금값

꽃을 바라본다. 책장 위 나란히 줄 세워진 몇 개의 꽃다발, 향긋한 비누 향이 나는 조화다. 언제 어디서 받은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십 년이 넘은 것도 있다. 비누로 만든 꽃은 시간이 오래되어도 시들거나 모양이 변하지 않으니 오랜 기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꽃을 싫어한다. 사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정확히 말해 생화를 싫어한다. 생화를 싫어한다는 말은 받을 땐 아름답고 기분 좋지만, 꽃병에서 며칠 지내다가 이내 쓰레기통으로 가니 안타까워서 한 말이다. 효율을 중시하는 필자로서는 한순간의 기쁨을 위해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생화가 아무리 효율성이 없다지만, 꼭 사야 할 때도 있다. 바로 졸업식이나 생일 또는 시상식이 있는 뜻깊은 날이다. 매년 이맘때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식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꽃다발인 만큼 이 시기는 화훼 업계가 기다리는 성수기이다.

졸업식이 열리는 한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교문 앞은 꽃다발을 늘어놓은 채 호객하는 상인들로 가득했을 텐데, 꽃을 파는 상인이 아무도 없다. 가까운 꽃집을 찾아 꽃다발을 주문하면서 어떠냐고 물었다. 겨우 세 개 팔았다고 한다. 장미와 안개꽃 등을 골라 꽃다발을 주문 제작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꽃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주인은 원가가 두 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꽃다발에 쓰이는 꽃은 주로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긍정적 감정의 꽃말을 가진 장미,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프리지어, 맑고 깨끗한 마음의 꽃말을 가진 안개꽃 등을 많이 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판매용으로 뿌리를 자른 장미 한 송이 가격이 1만 6000원, 안개꽃은 1만 9000원, 프리지아 가격도 4000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비싼 장미나 안개꽃을 듬뿍 담은 꽃다발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다.

가격이 급등했으니, 생산자와 판매자는 좋을까. 재료비가 두세 배 올랐다고 해서 판매가도 두세 배 올릴 수는 없다. 마진이 적다 보니 생산자도 판매자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품질이 안 좋은 꽃이나 재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소비자는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우니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사지 않는다. 결국 생산자도 판매자도 소비자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비싼 생화 꽃다발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꽃다발도 중고로 사거나 장난감, 비누, 사탕 등으로 조화를 만들어 가격과 실용성을 모두 챙기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한 번 사용한 꽃다발을 직거래 중고마켓에서 구매하거나 비누 등으로 만든 조화를 구매하는 것은 고물가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관계기관에서 화훼 농가를 위해 관공서나 기업에 소비를 독려하는 대책을 내놓은 것을 보았다. 그런 단기적인 대책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불경기 속 소비자에게 소비를 강요해 봐야 꽃 소비는 사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가격이 너무 비싸 소비가 일어나지 않는 만큼 어렵지만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와 에콰도르의 전략적 경제협력 협정이 타결되어 올해 안으로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다. 중남미 유망 투자처이자 자원 부국으로 꼽는 에콰도르와의 경제협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문제는 화훼 수출 강국인 에콰도르의 값싼 꽃들이 들어오면 소비자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겠지만, 국내 화훼농가는 피해를 볼 게 뻔하다. 한-에콰도르의 경제협력은 양날의 검이다. 하나로서 모두를 꿰뚫는 일이관지(一以貫之)는 없을까. 싸고 품질 좋은 다양한 품종개발로 내수는 물론 수출까지 잡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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