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감사 기도
세상사는 이야기-감사 기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31 11:0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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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감사 기도


아침 식탁에 잡곡밥 한 공기, 한 사발의 시래기 된장국, 김치 한보시기를 앞에 놓고 경건한 기도를 합니다. 이밥 한 그릇도 하느님께서 은혜로이 내리신 음식임을 생각합니다. 이밥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힘을 내어 하루를 건강하고 복되게 살아갈 것임을 생각합니다. 내 입에 들어가는 밥이 되기까지 곡식의 일생을 보면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밥 속에는 현미 조금 콩 찹쌀도 조금 그리고 귀리도 조금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식 잡곡밥이라 부릅니다. 내가 먹는 아침 식사입니다. 잡곡밥을 먹지 않는 날은 우엉과 표고버섯과 무와 당근 대추를 달인 물을 마십니다. 야채 달인 물 한 그릇을 앞에 놓고도 기도합니다. 그것도 하느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생각합니다. 채소를 기르느라 고생한 농부들과 밥을 먹을 수 있게 노동을 한 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단 한 그릇의 밥도 먹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합니다. 그리고 밥 한 그릇을 벌 수 있게 일한 하루의 삶에도 감사하고 일할 수 있는 몸을 갖게 해주신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밥 한 그릇 속에도 촘촘하게 연결된 많은 사람과 자연과 사물과 작은 우주가 들어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상 가득 차려놓고 포식을 해야 잘 먹은 것이 아닙니다. 밥 한 그릇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을 수 있으면 그것이 성찬입니다.

시래기가 되어 걸려 있는 것들은 무나 배추의 맨 처음 나온 이파리들입니다. 땅에 심은 씨앗이 싹으로 변해 흙을 뚫고 나올 때 사람들이 제일 기뻐했던 것도 그것들이고 흙먼지와 폭우를 가장 오래 견딘 것도 그 이파리들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에 그들은 제일 먼저 버림받았습니다. 쓰레기통으로 가거나 그대로 버려지게 될 운명에 놓여 있다가 그나마 자신들을 기억해주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눈 맞아가며 겨울을 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그 버림받은 것들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래깃국을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이 어떤 맛인지를 압니다. 그러나 한 사발의 시래깃국이 된 그 이파리들이 어떤 이파리들이었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그렇게 시래기가 되어 인생의 겨울을 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생전에 생불이라 일컬음을 받던 청화 스님은 하루에 한 끼 일종식을 하시며 몇 달씩 장좌불와, 묵언정진을 하셨는데 노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어 보살님이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공양을 올리면 스님은 방바닥을 두드리며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셨답니다. 반찬을 두 가지만 해오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청화 스님의 행장을 읽으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빵 한 조각 앞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시래깃국 한 그릇 앞에 놓고 잠시 묵상하며 겸허해지고자 합니다. 밥 한 그릇 앞에서도 이것을 먹어도 될 만큼 오늘 하루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사물을 존중하고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나는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 주고 있는가? 밥은 커녕, 누군가를 씹어대는 못된 입 때문에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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