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pg dn’
아침을 열며-‘pg dn’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01 14: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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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pg dn’

응? 제목이 이게 뭐지? 아마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은 바로 알 것이다. 컴퓨터 키보드에 있는 키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page down(페이지 다운)’ 키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 이 키를 누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기 때문이다.

‘pg up’ 키를 누르면 지나온 페이지들이 보인다. 제법 좋았다. 좀 신도 났다. 한국이라는 이 사이트의 경제면은 특히 화려했다. 1945년 해방 직후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음을 고려하면 지금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어 있음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최고 부자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우리 한국을 지칭해 ‘부자나라’라고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외부의 평가도 있었다. 군사면은 어떤 점에서 더욱 화려하다. 1950년 북쪽 인민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려 순식간에 서울을 잃고 낙동강까지 쫓겨 내려갔었는데 이젠 군사력이 세계 6위권으로 평가된다. 방위산업 면에서는 최강국 미국과도 경쟁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대포나 전차는 물론 전투기 미사일까지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기술력은? 삼성을 위시해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은 부분부분 세계 최정상을 인정받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가 그 상징이다. 자동차와 TV 등 가전도 만만찮다. 가장 화려한 것은 아마도 문화면일 것이다. ‘한류’라는 것은 이제 영화 드라마 음악을 가리지 않고 거의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며 소비되고 있다. BTS는 그 상징이 되었다. 아카데미상도 에미상도 빌보드도 이젠 낯설지 않다.

아마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일 것이다. 미국의 매체 ‘US 뉴스&월드리포트’는 작년도 세계 종합국력 평가순위에서 한국을 세계 6위에 올려놓았다. 프랑스와 일본을 제친 순위다. 많은 국민들이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했을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말이 이젠 단순한 ‘OECD회원국’ 이상의 감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서방 최고 선진국 그룹인 이른바 ‘G7’도 넘보고 있다. 여러 번 초청국으로 불려 다니며 거의 준 회원국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얼마나 부러웠던 선망의 대상이었던가. 그런데 우리가 그 멤버를 바라보고 있다니!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제 그 다음은? 우리는 정말 그 순위들을 계속 끌어올리고 G8의 반열에 들게 되는 걸까? 점점 더 부유해지고, 점점 더 강해지고, 점점 더 똑똑해지고, 점점 더 멋있어지고, 그렇게 되는 걸까? 어찌 궁금하고 기대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대가 크면 당연히 실망도 클 수 있다. 이 기대가 현실이 되는 건 자동이 아니다. 수동이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던 것처럼. 일본을 보라. 저들도 승승장구했었다. 1980년대엔 한때 미국도 추월해 ‘Japan as No.1’을 부르짖기도 했다. 환각이었다.

거품은 꺼졌고 잃어버린 10년 20년을 거치며 이젠 세계 3위도 위태롭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남들 또한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만한 나라는 별로 없다. 한때 우리가 멋모르고 깔봤던 중국과 인도는 한참 전에 우리를 추월해 이젠 따라가기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추격해오는 나라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러시아는 물론, 베트남도 인도네시아도 멕시코도 브라질도 ...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산적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고령화 저출산은 이젠 누구나가 다 안다. 정치의 후진성도 다 안다. 출구도 보이지 않는 오리무중이다. 국론은 갈가리 분열돼 있다. 청년들은 3포 4포 다포로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런 건 ‘pg dn’은 커녕 아예 ‘delete’키를 누르고 싶다. 다만 다행인 건 그다음 페이지가 아직 백지라는 거다.

그건 우리가 지금부터 써야 한다. 가장 큰 다행은 우리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게 ‘인재’다. 그건 이 나라의 불가사의다. 분명히 있다. 이끌어줄 이순신만 있으면 된다. 우리의 20세기 후반을 ‘복-붙’(ctrlC+ctrlV) 하고 싶다. 누가 뭐래도 그때는 우리의 황금시대였다. 그 시대를 이끌어준 선배 세대들에게 우리는 돈수백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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