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남다른 표현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남다른 표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04 13:06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우담의 ‘시가 흐르는 길’-남다른 표현

올림픽 장거리 선수들이 달린다
하나같이
앞사람 뒤꿈치를 보며 달린다
다리뿐인 홍학 같다
앞사람이 왼발 거둬 가면
뒷사람은
재빨리 그 자리에 왼발 던져놓는다
매스게임처럼 한 번도 맞춰본 적 없는 저 홍학들
아슬아슬한데,
달리다 홍학이 홍학을 밟아 넘어뜨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앞사람 뒤꿈치는
종교다
경전은
오래 달릴수록 아래를 보고 앞사람 뒤꿈치를 보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다리만 내뻗는 선수들
네 왼쪽 뒤꿈치가 있던 자리에
내 왼발이 착지한다.

(이미화의 ‘뒤꿈치에 관한 명상’)

아시안컵 축구대회 중계를 보다가 잠을 설쳤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이미화 시인의 ‘뒤꿈치에 관한 명상’이다. 이미화 시인은 201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치통의 아픔’, ‘그림자를 옮기는 시간’ 등이 있다.

아킬레스건이 ‘뒤꿈치’와 장딴지를 연결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취약한 부분이다. 제목이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다. 올림픽 종목에서 메달이 제일 많은 종목은 육상이다. 예전에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력은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높이뛰기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시인에겐 통찰력 개발과 사색을 위해 독서가 필요하다. 이처럼 육상이 발전하지 않으면 경기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화 시인은 달리는 선수의 다리를 ‘홍학’의 긴 다리로 빗댔다. ‘홍학’이 선수가 되고 때론 선수가 ‘홍학’이 된다. 왜 ‘홍학’이라 했을까. 붉은 피가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고 시인은 앞에 달리는 선수의 근육질이 작품 짜임새나 긴장감이라 여긴 것이다. 긴 학의 다리는 볼 것 없지만, 시인의 직관으로 뒤꿈치를 형상화하고 있다. 자기 작품과 다른 시인의 작품을 놓고 비교 분석하는 것은 아닐까. 홍학은 경쟁하듯 길을 삼켜버리고, 곧은 다리처럼 직선으로 나아간다. 이미지의 전개가 “아슬아슬한데, /달리다” “홍학이 홍학을 밟아 넘어뜨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긴 시간을 달리다 보면 선수들의 팔이 처지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선수 간의 간격이 벌어진다. 간혹 기권하는 선수도 있고 순위도 바뀐다. 문학회 등에서 습작을 같이한 회원들의 작품도 시간이 지나면 서열이 정해진다. 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다가 서로 시풍이 달라지고 사물의 형상화도 달라진다. 날이면 날마다, 하나의 의식인 스트레칭처럼 경쟁은 반복적이고 연속적이다.

상상력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의미의 진실을 깨닫게 한다. 화자는 올림픽 경기를 시청하다가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의 발놀림을 보았다. 오래 달리려면 무념무상으로 다리를 내뻗어야 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선수들은 다리가 서로 엉키지 않는다. 경쟁자들이지만 뒷사람은 앞사람의 뒤꿈치를 믿고 또 앞사람의 뒤꿈치는 지극히 정직하다. 마음보다 다리가 먼저 안다. 선의의 경쟁이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들은 근지구력과 심폐기능이 뛰어나야 한다. 이처럼 시 창작에서도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과 시적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장거리 달리기가 단순해 보일 줄 모르나 체계적인 훈련과 전략이 필요하다. 상대 선수의 호흡과 팔의 각도 등에서 순간순간 작전이 필요하다. 앞에서 달리는 선수는 물론 뒤따라오는 선수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몸 상태를 파악하면서 달린다. 오버페이스 하지 않고 기록 단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앞사람 뒤꿈치를 보며 달린다/ 다리뿐인 홍학 같다” 군더더기 없는 종아리 근육과 하지장이 긴 선수들의 주법은 예술이다. 뒤에서 보면 평소 갈고 닦은 주법대로 흐트러짐 없이 결승점까지 끌고 가는 게 목표다. “앞사람 뒤꿈치는/ 종교다” 앞서가는 이가 만든 길을, 자신의 보폭에 맞는 길을 따라 걸어갈 뿐이다. 뒤꿈치는 철학적 사유를 환기하게 한다. “경전은/ 오래 달릴수록 아래를 보고 앞사람 뒤꿈치를 보는” 것은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이 길 위에서 전진한다는 걸,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시 쓰기도 장기전이다. 내면의 깊이와 넓이가 있어야 한다. 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 선수처럼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가짐과 남과 다른 표현을 해야 한다.

축구 경기도 창의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며 상대팀의 아킬레스건을 파고들어야 한다. 끝으로,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대표팀의 우승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