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글을 쓰는 이유
김성진의 다른 눈으로 세상 읽기-글을 쓰는 이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19 12: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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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
김성진/진주문인협회 회장-글을 쓰는 이유

처음 본지에 칼럼을 쓰면서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좀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글은 지극히 상투적인 일반론에 그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시사평론가도 아닌 필자가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현상을 다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년 넘게 연재해 오면서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오늘부터 주제를 당대의 시사에 한정하지 않고 세상사는 모든 이야기로 확장하여 쓰려고 한다.

필자가 글을 쓰면서 꼭 다짐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상투적인 글은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나의 글은 상투적이다 못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글이 그랬던 것 같다. 책상머리에서 비장하게 다짐해도 손가락은 뻔뻔하리만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녕 완벽하게 새로운 논리는 없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어쩌면 그 정답은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그럴듯한 좋은 말이 아니었을까. 발단이 되는 서두, 현실의 에피소드, 문제의 당위성과 대책을 제시하며 결론 맺는다. 그러다 보니 열린 답이 아니라 정해진 답이 된다. 그것이 문제였다.

어느 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쓰냐.”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글을 쓰는 이유나 의미를 설명하기는커녕 말문이 막혀 잠시 머리가 멈춰버렸다.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한데, 내 행복은 포기하라는 말인가. 글은 나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최고의 도구이며, 누군가에겐 희망을 주는 일이라 해봐야 생각의 중심이 다르니 먹힐 리가 없다.

필자에게도 분명 작가가 된 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의 동기였지, 글을 쓰는 이유나 목적은 아니었다.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쓰냐는 질문에 막막해진 건 사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던 그 질문에 구체적인 이유를 찾지 못한 것 때문이다.

딱 쉰이었을 때, 문득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다. 터널의 앞뒤가 막혀버려 오도가도 못 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캄캄했다. 무언가 잃어버리긴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늦어버린 시간 때문에 모르는 척했을지 모른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 그대로 잃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부터 죽을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집중했다. 출발이 늦었지만,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았다.

글을 왜 쓰냐는 물음에 명쾌한 답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글이 밥값을 못 한 것은 사실이니까. 민낯의 진짜 나를 만난 것이다. 글을 쓰면서 아는 척, 아픈 척, 좋은 척 그렇게 척하며 글을 써온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자체가 좋았다.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사람이 먼저 깨달은 것을 배우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만든 세상을 탐험하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어설픈 깨달음을 얻는다. 무얼 읽을까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읽는다는 행위가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 누군가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나의 것을 알기도 한다. 무엇을 읽는가 보다도 읽는다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것처럼 무엇을 쓰고 싶은가 하는 목표 의식보다도 그저 쓴다는 행위 자체에 기쁨이다.

때로는 창작의 고통이 찾아올 때도 있다. 어느 날은 한 문장을 종일 노려보고 있거나 무의미한 한 행간만 씹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글이라는 녀석이 사랑스럽다. 제법 뻔뻔한 얼굴로 세상 모든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웃어버릴 여유가 생긴다. 노트북을 쏘아보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여보, 글 쓰는 것이 그렇게 좋아? 입이 귀에 걸렸네.”
서둘러 표정을 숨겨보지만, 나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는 감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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