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최대성 장군 현판 ‘도 문화재’ 되었다
진주성-최대성 장군 현판 ‘도 문화재’ 되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1 17:3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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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최대성 장군 현판 ‘도 문화재’ 되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군관으로 활약하고 이어 모의 장군이 되어 충성을 다한 최대성(崔大晟)장군과 아들들 최언립(崔彦立), 최후립(崔厚立)과 함께 전사 순국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유적, 현판, 재각 등이 금년 2월에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최대성 장군은 전남 보성군 겸백면에서 태어나 33세 때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판관, 첨정, 훈련원정에 임명된 분이다. 진주 일원에 사는 후손들은 고려 대사성에 오른 문정공 최해의 후손들인데 후손들이 충효정신을 고양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재각, 현판 등을 도문화재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받아 필자가 자료 수집 정리를 진행해 온지 4년이나 지났다.

최해 대학자는 경주 최씨이고 호는 졸옹(拙翁)이다. 문과에 급제해 원나라 제과에 급제한 천재로 통한다. 고려 명현들의 시문을 뽑아 만든 ‘동인지문’이 있고 ‘농은집’, ‘졸고천백’ 등이 있다.

최대성 장군은 1595년 5월 보성군에서 종사랑 유공진, 군관 이충일 등과 이순신 장군을 뵈었다고 ‘난중일기’에 기재되었다. 계속해서 거제, 한산, 마산, 웅포 해전에 참전했으며 1598년 웅치 전투에서 적군 1백 여명을 베었지만 적의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고 아들 2명과 함께 전사해 선무공신에 등재된 만고의 충신이다.

최대성 장군은 ‘조선왕조실록’, ‘호남절의록’, ‘영남인물고’, ‘조선환여승람’ 등에도 등재된 모의 장군이다. 순국하신 지 160년이 지나 각 지역 선비들의 탄원서에 의해 비로소 통정대부 형조참의 어모장군에 추증되었고 1752년(영조 임신년)에 현판이 명하여 지고 진주시 미천면에 검남재가 완성되었다.

약 4년간 조사, 연구한 필자가 앞장서고 직계 손 최형준, 최인수, 최재영(도청 7급 공무원) 시의원 최신용 등이 문화재 지정을 위해 도움 역할을 했다. 진주시 안간파출소 옆에 제단비가 건립되었으나 최장군의 묘소, 현판, 비석이 모두 문화재 지정되지 못한 억울한 면이 있으나 늦게나마 금년 2월 초에 현판 4점이 문화재 지정이 성사된 일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최대성 장군을 기리는 축하 행사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지금까지 참여하지 못한 진주성 창렬사에 합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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