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비빔밥과 전주비빔밥의 역사, 그 실패와 성공(2)
진주비빔밥과 전주비빔밥의 역사, 그 실패와 성공(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5 16: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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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강/간호사 시인
최희강/간호사 시인-진주비빔밥과 전주비빔밥의 역사, 그 실패와 성공(2)

필자는 오랜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틈이 나면 전국의 맛집을 기행 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진주에 정착한 이후 진주비빔밥과 진주헛제사밥, 진주냉면 등, 진주를 대표할만한 음식문화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뿌듯하면서도 안타까운 점을 앞으로 이 칼럼에서 말하려고 한다.

지금 세계적인 K-Food로 성장하고 있는 ‘비빔밥’의 원조 도시가 진주라고 당당히 주장할만한 역사적 기록과 그 정통성이 있는데도, 이것을 제대로 콘텐츠화시키지 못하여 전라북도 전주에 밀리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주는 비빔밥이 원조’고 ‘전주는 콩나물국밥이 원조’인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샌가 진주비빔밥보다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졌다. 전주 한옥마을 주변과 전주 시내엔 비빔밥 전문식당이 많다. 저렴한 가격대로 쉽게 먹을 수 있는 비빔밥도 있고, 전통을 그대로 살렸다는 ‘전주비빔밥 정찬’ 또는 ‘전주비빔밥 정식’이라는 고급화된 종류도 있는데, 필자가 경험한 고급 비빔밥집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상견례와 돌잔치, 외지 귀빈들에게 대접하는 광경을 목격했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비빔밥도 꽤 인기 있었다. 그러나 콩나물을 주축으로 한 몇 종류의 나물에 계란후라이를 얹어주던 특징은 사라지고 진주의 육회비빔밥 흉내를 내는 비빔밥이었다.

사진은 2002년 5월 25일에 진주성 일원에서 열렸던 제1회 진주비빔밥축제(주최 진주시)의 순서지 일부를 촬영한 것이다. 거기엔 진주비빔밥의 설명이 잘 돼 있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에는 진주지방에 효채(淆菜)밥, 지금의 비빔밥이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서 즐겨 먹던 음식 중 하나였으며, 특히 태종 때에는 한양의 정승들이 진주비빔밥을 먹으러 진주에 자주 왔었다는 기록이 있다.”

칠보화반, 또는 꽃밥으로 불리는 진주비빔밥에 담긴 역사성과 멋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물과 고명의 종류 등 열두 가지가 얹혔다. 그리고 우리 전통의 오행 사상이 담겨 있다. 푸른색인 시금치, 미나리, 호박, 오이, 은행은 음양오행의 목(木)을 상징하고, 붉은색인 육회, 고추장, 대추는 화(火)를, 황포묵, 황란, 호두, 잣 등 노랑색은 토(土)를, 도라지, 무, 숙주, 죽순은 백색인 금(金)을, 검은색인 고사리, 다시마, 표고버섯은 수(水)를 나타내는 등 동양사상의 오행오색(五行五色)이고 우리의 전통의 오방색이다.

그리고 나물의 가지 수가 한정된 게 아니라 제철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진주비빔밥의 특색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의미를 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양의 정승들이 진주까지 비빔밥을 먹기 위해 천 리 길을 자주 왔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동양철학의 중심사상과 건강을 고려한 음식문화를 체계화시켜 놓은 것 같다.

세상 어느 지역에 이렇게 역사성이 뚜렷한 음식문화가 있었던가? 그런데 진주의 비빔밥은 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가? 진주비빔밥축제는 왜 흐지부지되었는가? 이런 내용을 다음 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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