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채워진 술잔(1)
기고-채워진 술잔(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8 14:05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채워진 술잔(1)


모두들 바쁜 일상 속에서 약속을 잡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도 무슨 날이나 돌아와야 겨우 만남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 내야 모임도 할 수 있다. 특별히 무슨 이름을 지어 모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고 싶을 때 누군가 먼저 연락을하면 된다. 오래전부터 만나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문자를 주고받아 11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송년회를 하자고 했다. 2호선 전철역 가까운 곳에 P식당을 정했다. 오후 2시 늦은 점심이라 집에서 밥을 먹고 가기는 그렇고 배고픔을 꾹 참았다. 가까운 거리라 걸어서 갔다. 가는 길에 바람은 약간 불지만 추운 날씨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플라타너스 잎이 갑자기 내 앞에서 툭 떨어져 깜짝 놀랐다. 동네 우체국을 지나 신호등을 건넜다. 식당 간판이 보여 들어갔더니 내가 일등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예약된 자리에 앉았다. 구수한 고기 냄새가 났다. 몇몇 손님들이 고기를 굽거나, 이야기를 하고, 셀프로 반찬을 나르기도 하였다. 남자들이 4명 모여서 술잔을 채우고, ‘위하여’하며 술 마시는 것을 보고 술을 먹지 못하는 나는 만날 때마다 걱정이 되었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해주니 그저 고맙다.

맥주 한 잔을 철철 넘치게 채워서 한번에 마셔볼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해보았다. 알바 아주머니는 반찬들을 구색 맞게 가지런하게 놓았다. 심심해서 앞에 놓인 반찬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상추, 콩나물, 대파무침, 청양고추, 배추김치, 두부가 들어간 된장 찌개, 상추 겉절이, 납작하게 썬 마늘, 둥글게 썬 구워 먹는 양파, 가늘게 썬 양파 소스 등 다양하다. 고급스러운 반찬은 아니지만 모임에 와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기다리다 보니 문 앞으로 눈길이 갔다. 손을 흔들며 거의 비슷한 시간에 맞추어 왔다. 메뉴를 정하는데, 3명 테이블은 소 한 마리, 2명 테이블은 소 반 마리를 시켰다. 소의 부위별로 도마위에 올려져 나왔다. 5명이라 그렇게 시키지 않으면 식당주인에게 눈치가 보였다. 달궈진 불판에 먼저 돌돌 말린 차돌박이를 구웠다. 얇아 금방 쭉 펴진 것을 손잡이가 빨간 가위를 오른손에 잡고, 집게를 왼손에 잡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금방 익은 것을 상추에 싸서 먹었다. 꿀맛이네. 고기를 굽는 정이는 바쁘게 뒤집어 타지 않게 열심히 구웠다. “고기만 굽지 말고 먹으면서 구워요.”하고 나는 눈치를 보며 먹는 데만 열중하였다. 두꺼운 살코기도 잘 구워 영양 보충을 한다며 상추에 싸서 냠냠 맛있게 먹는데 뭔가 빠진 것 같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