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정양늪 수계에는 고향 사람이 살고 있다
제언-정양늪 수계에는 고향 사람이 살고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8 14:0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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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정/경남도립거창대학 산학협력중점교수 농학박사
최근, 합천 정양늪지와 관련하여 예상치 못한 2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는 정부 기관 학술지에 정양늪지 관련 논문게재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 사람들이 정양늪지의 습지정원에 대해 매우 반대한다는 것이다. 먼저 것은 확정되었기에 별 부담이 없으나, 후자는 삶의 문제이기에 고민되고 신중해진다.

평생 지역민의 삶과 경관을 연구한 조경학자로서, 환경개발에 올바른 행정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마땅히 해야 할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조경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 보면 습지정원을 그리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이글을 기고함으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정양늪지는 합천군 대양면 가장 하류에 위치한 배후습지이다. 늪지는 원래 황강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던 것이 황강에서 모래 채취 등으로 상대적으로 하상이 낮아져 물이 빠지게 되면서 습지 유지를 위해 합천군에서는 보를 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는 더욱 견고해지고 높아졌다. 이에 주민들은 인공보가 있는 정양늪지를 자연습지의 일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합천군 관계자는 이러한 늪지가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습지정원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수계에 있는 대양면 주민들은 전국의 몇몇 곳을 답사하고 다시 처음부터 논의하자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행정은 이미 공청회까지를 열었기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주민은 지금껏 지켜온 지역사랑에 대한 상실감이 크게 느끼고 있다.

이미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어 조성한 생태공원을 보면 주민들의 삶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합천군에서 만들어 군청 홈페이지에 탑재되어 있는 2020년 ‘정양늪관리계획’을 보면, 실제로 계획에 참여하여 생태공원을 조성한 부서 관계자와 환경론자들은 정양늪지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호 백조도래지”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늪지에 있는 생태학습관에 근무하는 관계자도 금개구리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늪지에 서식하거나 오가는 다양한 천연기념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늪지와 관련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수 차례 군청의 담당 부서를 방문하여 과장 및 팀장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 사진과 스토리가 있음을 이야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염불이다. 1973년 천연기념물 제2호가 해제되기 10여 년 전인 1962년 정양늪지에는 커다란 분쟁이 있었다. 연고도 없는 이원용이라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 어획권과 수초 채취권을 주장한 내용이다. 주민들은 행정가 또는 전문가라고 하는 낯선 이방인이 와서 지역의 풍경과 풍토를 잘 아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계에 살고 있는 고향 주민은 순박하지만 이러한 행정적 처사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라도 합천군 관계자는 상향식(bottom up) 개발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경청해야 한다. 진정 늪지를 보전하고 관리하겠다면 제대로 실상을 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그 이후에 의사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이고, 그 결정이 매우 합리적이라면 주민들은 수긍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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