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정신의 또 다른 현장 ‘망진산 봉수대’
진주 정신의 또 다른 현장 ‘망진산 봉수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24 14:4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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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강 칼럼/시인·간호사
최희강 칼럼/시인·간호사-진주 정신의 또 다른 현장 ‘망진산 봉수대’

13년 전이다. 진주에서 개최되는 ‘이형기 문학제’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의 시인 80여 명과 함께 필자는 처음으로 진주에 왔었다. 이형기 시인은, 국민 애송시로 선정된 ‘낙화’의 시인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또한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존경의 대상으로 선정될 만큼 고고한 인품의 시인으로 기억한다. 이형기 시인을 흠모하는 마음이 컸던 필자는 휴가를 내어 이형기 문학제에 참석했다. 진주에 온 김에 짬을 내어 진주성과 이형기 시인의 시비가 있는 신안동 녹지공원에도 갔었다. 참으로 진주는 곳곳이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도시였다.

진주 출신 선배는 우리를 망진산으로 안내했다. ‘망진산(望晉山)’은 원래 ‘망경산(望京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진주 사람들은 왜 서울을 바라봐야 하느냐며 진주를 바라보는 뜻을 담아 망진산으로 했다고 하는 설명을 듣고는 진주 사람들의 카랑한 기운이 느껴졌다. ‘망진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남강과 촉석루와 시내 풍광은 절경이었고, 망진산 봉수대를 복원하기까지의 과정은 감동을 주었다.

망진산 봉수대에 얽힌 이야기로, 일제 치하인 1919년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질 때 진주에서는 기생들과 걸인들이 3월 16일과 19일,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고, 당시 전국 각지의 봉수대에선 봉화가 올랐다고 한다. 그 후 일제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전국의 봉수대를 거의 파괴했다고 한다.

1996년 진주문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모여, “망진산 봉수대를 복원하는 일은 민족정기와 진주정신을 올곧게 세우는 일이다”라는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망진산 봉수대가 파괴된 지 100여년 만에 봉수대를 복원하기 위해 진주문화사랑모임에서는 ‘망진산봉수대 복원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시민 2000여명이 참여한 성금 8천여만원으로 봉수대를 복원했다고 한다.

이 봉수대의 주춧돌은 백두산돌과 한라산돌, 지리산돌과, 독도돌, 진주 월아산돌을 추진위원회에서 채석단을 꾸려 예를 다한 후 직접 가져와 놓았으며, 통일의 그 날이 오면 금강산 돌을 가져와서 놓을 자리를 상징적으로 마련해 놓는 등,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강력한 뜻도 담았다고 한다. 순수 시민운동으로 이루어진 뜻깊고 기념할만한 역사다.

망진산 봉수대는 진주에 여행 오는 나의 지인에게 꼭 보여주는 명소가 되었다. 물론 진주는 진주성의 깊고 처절한 호국의 역사와, 남강이라는 천혜의 보물을 끼고 있어서 자랑할 것이 많은 도시지만. 망진산 봉수대는 남명사상과 형평운동, 진주농민항쟁과 여러 문화운동이 연결된 ‘진주정신’의 살아있는 현장일 뿐 아니라 진주를 조망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외지에서 온 지인들과 함께 망진산에 갔다가 봉수대가 허물어져서 천막으로 가려놓은 것을 목격하고는 놀랍기도 하고 민망했다. 알아봤더니 7월의 집중호우로 허물어졌다고 했다. 안타까웠지만 속히 복원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올해 초 다시 방문했을 때도 무너진 그대로였다. 시민들과 외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흉한 모습으로 오래 방치되면 안 되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망진산봉수대의 원래 자리에 다시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기쁜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성은 문화재로도 가치가 있다는 결론으로 경상남도 지정문화재(경남도 기념물) 신청을 해 놨다고 한다. 진주시장님과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망진산봉수대는 어느 시대의 역사가 아니라, 진주 정신을 이어가는 역사의 현장이므로 1996년 진주 시민들의 힘으로 다시 복원했던 과정도 상세하게 후대에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진주가 정말 좋아서 진주에 이주해온 객지 사람이기에 진주의 역사나 진주 정신을 말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객관적으로 진주시의 방향성을 볼 수도 있다는 지인의 격려에 용기를 얻는다. “인생을 가장 멋지게 사는 방법은 가능한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말이 망진산봉수대 곁으로 부는 바람결에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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