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 천갑녕 선생의 ‘한글서예·솔뫼체’를 묻다
‘솔뫼’ 천갑녕 선생의 ‘한글서예·솔뫼체’를 묻다
  • 배병일기자
  • 승인 2024.03.24 17:24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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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한글서예, 일반인들이 함께하는 서예가 되길
▲ 자신만의 서체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솔뫼 천갑녕 선생.

한문 서(書)·한글 서 조화 국한 혼용 작품 높은 성취

특유 미적 가치 부각…예술·사상적 기반 근거 제시
옛 한글 서체 습득·체계화시켜 솔뫼 선생 서체로 정착
한글서예 활로 더욱 넓고 크게 열어 놓았다 평가 받아



일반적으로 서예를 떠올리면 한문을 생각하기 쉽다. 한글서예가로서 한글서예의 이론적 체계화와 특유의 미적 가치를 부각시키고, 예술적, 사상적 기반과 근거를 제시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온 진주 출신 솔뫼 천갑녕 선생(이하 솔뫼 선생)을 만났다.

선생의 고유 서체인 ‘솔뫼체’는 먼저 초기 한글 반포 시기의 정음 서체, 한글 서예의 묘미를 극대화한 궁체, 일반인의 생활 한글 서체를 철저하게 습득하고 체계화시켜 선생만의 서체로 정착시킴으로써 한글 서예의 활로를 더욱 넓고 크게 열어놓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선생의 한글 서예 작품은 단정함 속에 진중미를 담았고, 유연하면서도 날렵한 세련미 속에는 엄정한 법도를 세웠다. 한문 서예와도 잘 어우러진다.

한글 서예계 중요한 인물로서 선생의 생애를 지면을 통해 조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글 서예 사랑에 대해 선생의 구술을 통해 그 생애를 따라가 본다.

-서예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6, 7세 무렵 조부로부터 손자 교육을 위해 이름, 주소 쓰기를 한자로 가르쳐 주시고, 예로부터 이린아이들의 교육서로 사용하던 추구(推句: 옛 한시를 도막 도막 놓은 책)를 읽고 가르쳐 주셨는데 아마도 그때 집필묵을 잡은 것이 서예 첫 걸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전교 학예 대회에 반 대표로 저학년 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게 됐다. 이것을 계기로 강희진 선생으로부터 한글 서예 지도를 받는 것이 서예의 첫걸음이 됐다.

예전엔 한글 서예에 대한 인식이 한문 서예에 비할 수가 없었지만 우리글을 사랑함이 곧 민족 사랑, 나라 사랑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고 한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우선 한글은 순 우리나라 글이면서 생각이나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고 일반 대중들과 맥박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큰 매력이다.

서예는 한문·한글 할 것 없이 미술의 정서·자연의 정서 음악과 같은 율성에 따른 흥·멋의 재미를 가지게 한다. 한글은 누구나 그 내용도 잘 헤아려 볼 수 있는 그러면서 이점이 있다.

스스로 지은 시나 문장을 붓으로 옮겨 작품화하는 것 또한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가끔 기록해 두었던 생각이나 시편들을 <자연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한 적이 있다.

서예는 그 수련 과정을 통해서 심신을 안정시키고 간결하게 한다. 이 중에 한글은 우리의 말, 글은 반복 연습 하는 과정에서 나라 사랑의 마음도 더 길러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붓글씨를 쓰고 있는 솔뫼 천갑녕 선생.
붓글씨를 쓰고 있는 솔뫼 천갑녕 선생.

-선생 고유 서체인 ‘솔뫼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
▲우리글에서 서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갖추어야 할 바탕과 일정한 계통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고전 한글 자료가 있는 한국학 연구소의 장서각이나 서울대학교 규장각 자료들 구하기에 큰 노력을 했다.

지난 역사에 남겨진 훌륭한 글씨 흔적들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 이들 자료 중에서 괜찮은 필법들을 따라 쓰다 보니 이젠 제 나름으로 구사하는 서체를 갖게 됐다. 이러한 나의 글씨를 보고 ‘솔뫼체’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다. 작가로서 그렇게 이름하여 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국내 한글 서예 공모전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셨는데 대표적인 입상 경력을 꼽자면
▲국전이라고 일컫는 미술대전에서 내리 10번의 낙선을 하고 드디어 1989년 제1회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때 나이 37세로 한문과 한글부문에서 우수상은 한글부 1등에 해당하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진주의 한글서예 수준이 서울과 다른 지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서예의 길에 큰 힘이 됐다.

그 후에 미술대전 초대 작가 (1991~)가 되어 현대미술관)초대전도 내고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책도 출판하고 전시도 가끔하면서 한글을 가꾸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들었다. 추구하는 시의 세계는
▲저로선 재미있는 질문이다. 저 자신이 감히 시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저는 문인들을 존중하고 특히 시를 쓰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운율이 있는 시가 좋아 옛 가사를 써 보기도 한다. 가끔 써 본 것도 운율이 있는 것이고 4행으로 된 시를 나의 시법으로 하여 쓴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저는 한때 17년 1개월(1996~2013)을 고향을 떠나 있다가 고향 진주로 돌아 온지가 10년이 됐다.

내 나이 43세 무렵이니 서울은 말씨도 다르고 의식도 달랐기에 그 곳에 있으면서 늘 고향이 그리웠다.

준비없이 시작된 서울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서예를 하기 위해 상경한 목적인 만큼 1998년에 한글서예 모임인 훈민 한글서예 학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을 맡아 한글 서예를 전국을 대상으로 알리고 한동안 이끌었다.

틈틈이 작품연구도 하고 월간 서예문인화에 약 5년간 한글서예의 이론에 관한 연재도 했다.

이밖에도 한국 서예 박물관(수원), 대학, 새마을 연수원 등에서 강의와 동호인 모임 회원전과 개인전을 포항, 진주, 서울 등지에서 여러번 갖기도 했다. 여기에 후학들의 길잡이가 될 서예 교재도 여러권 만들었다.

어느덧 제 나이 60세가 됐을 무렵, 불현듯 정든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요즘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없이 대중과 소통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 조건이 됐다.

본래의 성정으로 돌아와 여유 있는 인생의 후반전을 친근한 고향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 참 좋다.

-‘자연과의 대화’라는 책을 소개해 달라
▲‘자연과의 대화라는 책은 자작시 50여 편에 솔뫼체 중심으로 하면서 뒤편에 원본을 올려 실은 다시 말하면 자작시와 자작 붓글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튼 이 책은 저 고유의 붓글씨 서체와 4행으로 된 시를 선보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덧붙이자면 여기 나오는 4행 체계의 율격시는 새로운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 붓으로 쓴 글씨는 기존 한글 서체에 있는 고체, 궁체와는 다른 스스로 계발한 서체인 것을 감안한다면 ‘자연과의 대화’는 시의 강한 율격과 서예적인 율격이 함께 갖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시의 내용 또한 자연을 노래한 것으로 한편 한편에 자연의 잔잔한 정서와 함께 다시 자연이 된 시를 만날 수 있다.

-후학 양성에 대해 궁금하다
▲우리글을 애용하고 많이 쓰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고 국운을 일으키는 그것으로 생각한다. 민족애적인 생각으로 한글을 말하고 한글서예를 가르치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서울에 오는 학인들도 예년보다는 못하지만, 한결같이 따라와 주는 확인들에게 서예의 지식을 전하기 위해 일주일에 2, 3번 서실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이곳 경남 일원과 서울 등지에 출중한 제자들을 두고 있어 이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한글 서예의 본질적인 문제에 좀 더 충실해 보려 한다. 이제까지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한글 문자의 예술성, 다양성, 사회성, 철학성, 자연성을 담아서 한글의 위상을 더 높여야 할 것 같다.

내게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 모르지만 1, 2년 단위로 작품 책자도 만들어서 새로운 것들을 가까운 지인들에게라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저의 소박한 꿈이다. 여기에도 많은 공력이 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한글 서예의 뒷받침이 되는 이론서도 더 제작하여 그것이 씨앗이 되기를 희망한다. 기회가 되면 여러 작품을 통해 충실한 작품 전시도 가질 계획이다.

‘솔뫼’ 천갑녕 서예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제1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우수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전 출품,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 역임, 솔뫼 천갑녕 개인전 8회 개최, 한글 대표작가전 출품, 저서 <전통새한글, 한국시조 500선> 외 다수 출간 현재 진주에서 ‘솔뫼서실’을 운영하고 있다. 배병일기자·사진/이용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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