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봄이 오는 소리
세상사는 이야기-봄이 오는 소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26 13:2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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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수필가
김창동/수필가-봄이 오는 소리

봄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즘이다. 삼라만상도, 사람 마음도, 꿈길처럼 산들산들~ 한창 봄물 올라 꽃망울로 터지고 있음이다. 실록의 봄이 나뭇가지 끝 견고한 목피를 뚫고, 기어이 푸른 잎눈을 몽글몽글 틔운다. 이맘때쯤 땅 밑에는 봄을 기다리며 생명의 움을 틔웠을 봄의 새싹들이 고개를 내민다. 봄나물의 개선이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겨울의 언 땅을 뚫고 우리에게 봄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늘도 고맙고, 땅도 고맙고, 바람도 빗방울도 고맙다. 그루터기도 막 돋은 잎사귀도 고맙다.

지난가을 이래 한동안 뵐 수 없었던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고 필자가 살고있는 봉황동 유적지 주위를 산책하시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밖에 내어놓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떼의 움직임이 한결 부산하고 활발하다. 목이 잠기도록 안타깝게 쉬임 없이 울어 대는 소리에, 뉘 집 아기가 저리도 우나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것이 아기 울음소리가 아닌 고양이의 봄 앓이 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봄을 고양이에 비유한 시 구절을 떠올리며 아하, 봄이로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려 본다.

그런가 하면 겨우내 요양병원 앞에서 어설프게 포장을 치고 장사를 하던 붕어빵 장사 아저씨의 모습이 이즈음 보이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뒷산에 올라 일찍 저물어 춥고 쓸쓸한 귀갓길이면 나는 매번 그에게서 붕어빵을 이 천, 삼천 원어치씩 사곤 했었다. 갓 구워 낸 뜨거운 것을 사면서도 식을세라 품 안에 품고 동동걸음을 칠 때 겨울 저녁의 춥고 스산한 마음이 따뜻한 풀빵의 온기에 적지 아니 위안 비슷한 것을 받았다. 근교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김장걷이 끝낸 농한기를 이용해 붕어빵 장사를 한다는 그는 이제 올 한 해 농사 준비에 바쁠 것이다.

새벽 운동하기 위해 현관을 나올 때 창으로 보이는, 동트기 전 하늘의 암담한 어둠이 나날이 엷어지는 것, 어느 날 문득 환청처럼 들려오는 높고 화사한 새소리, 이상 저온 운운하는 기상청 발표와는 관계없이 어느 결에 걸친 옷이 무거워지고 상큼하게 드러낸 젊은 여자들의 다리가 맑고 고와 보이는 것, 바쁜 걸음 중에도 아웃도어 진열장에 걸린 밝고 화사한 빛깔의 옷에 눈길이 끌려 나도 모르게 멈춰 서게 되는 것 등ㅡ. 또한 병아리 떼처럼 재깔대며 길을 메우고 쏟아져 나오는 하굣길의 입학생들을 볼 때의 눈부심ㅡ. 그리고 감히 예감이라고 말하고 싶은 가슴 두근거림과 막연한 기대ㅡ. 이것이 바로 나의 봄인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봄을 못 견뎌 했었다. 그 화사한 빛과 아우성치며 솟아오르는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감당 못해 봄이면 어질머리를 앓곤 했다. 그러나 인생의 봄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이 지나 버리고 머리 희어지고 이마 주름 굵어지는 이즈음, 갈수록 봄이 아름답고 슬프고 새롭고 아쉽기만 하다. 봄 햇살의 화사함 속에 깃들인 슬픔과 그 찬란한 빛 속의 그늘을 알게 되는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밝고 환한 햇살 흔들며 바람이 분다. 나무들은 바람 속에서 바알갛고 통통하게 부푼 망울을 터뜨린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풀숲에 숨어 이 봄의 첫 꽃, 보랏빛 제비꽃이 수줍게 피고 있을 것이다. 무딜 대로 무뎌진 감성의 두터운 켜를 뚫고 꽃피고 잎 피는 봄이 물결처럼 넘실넘실 찿아올 것이다. 사람 마음 간질이며 귓속말로 속살거리듯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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