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부통령 3인 항일투쟁사
진주성-부통령 3인 항일투쟁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27 14: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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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부통령 3인 항일투쟁사

이시영(李始榮)선생은 호가 성재(省齋)이고 경주 이씨. 1891년 등과하고 이회영 선생과 함께 신민회에 참가하여 애국 사상의 고취에 진력했고 경술국치 직후 형제 6명 등 50여 명을 이끌고 1910년 12월 남만주에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해 청년 장교들을 양성했다. 1913년 북경에서 원세개 총통을 통해 동삼성의 교포들을 원조케 하였다. 3.1운동 때 북경에서 조완구, 이동녕, 조성환 등과 협의해 국내외 운동동과 연계시켰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법무총장, 재무총장이 되었다.

1945년 환국하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이 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상해 임시정부를 계승해 수립되자 이시영(1869~1953)선생이 초대 부통령에 취임했으며 대통령과 갈등하고 1951년 퇴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49년)을 수여받았다.

김성수(金性洙)선생(1891~1955)은 전북 고창군 출신. 13세 때 고광석과 혼인하였고 1908년 송진우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정측영어학교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1914.7)하고 귀국했다. 중앙학교 교장(1917~1918년)경성방직(주)설립 취채역 취임(1919년 11월) 동아일보를 창간하여 제 2대 사장, 1921년에는 동아일보 취체역에 선임되었다. 1922년 12월에는 동아일보를 통해 물산장려운동을 제창했다.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교장(1932.3)취임하고 진단학회를 지원하고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을 발기하고 관장이 되었고 조선문자 등을 간행하였다. 손기정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하자 무기 정간되자 1936년 11월 동아일보 취체역을 사임했다. 1949년 민주국민당 최고위원이 되고 1951년 5월 대한민국 제 2대 부통령이 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함태영(咸台永)선생은 함북 무산군 출신. 법관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검사가 되었고 독립협회 이상재 선생 등을 무죄 선고하고 파면되었다. 3.1운동 때 기독교의 대표였으나 민족대표들이 체포되면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33인에 들지 않았다. ‘독립선언서’ 1천 8백장을 북한 쪽에 배포케 했다.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3년형이 언도되었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고 심계원장, 한국신학대학장이 되었다. 제 3대 부통령에 당선되어 약 4년간 재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상했다, 자제는 함병춘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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