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해서 참 좋은 것들
만만해서 참 좋은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6.0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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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만만하다는 말, 어떤 의미일까.
얕보고 무시하여 우습게 여긴다는 뜻도 있겠으나 유별나게 친하고 각별하여 부담없고 편하다는 뜻도 있을 게다. 위급하거나 무서울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엄마”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엄마”라고 부르면 엄마는 만사를 제쳐놓고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내게 제일 만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눈이 올 때, 문득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 “우리 차 한 잘 할래”라며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면 바람의 옷을 입고 단숨에 달려오는 친구, 그동안 쌓였던 많은 일들을 갈래갈래로 풀어내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만나면 휴식의 의자처럼 피로회복이 절로 되니 만만할 수밖에..

엄마처럼 친구처럼 우리 주변엔 만만한 것들이 참 많다. 장을 보는 주부들이 저녁 찬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 콩나물이나 두부를 사곤 한다. 값도 싸고 요리도 간편하니 주부들에게 더없이 만만한 재료일 게다. 짜장면이나 라면도 한끼의 식사로 만만한 음식이 아니던가.

호텔식 부페나 고급 레스토랑이 품위 있고 휼륭하긴 하지만 한끼의 식사비용으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서민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사랑 받는 음식임에 틀림이 없다.

만만하다는 것, 알고보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내게 만만한 사람이 오히려 나를 지켜주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 일상의 만만한 것들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친근한 벗이 된다는 것, 복잡다양한 현대사회에서 나를 지키고 가꾸며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렇듯 만만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내게 만만한 것들이 많다는 것,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누군가에게 만만한 사람이 되는 거 참 싫었습니다/ 나를 얕보는 것 같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고 해서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참 싫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지금 내게 만만한 사람 하나 있었음 좋겠다란 생각이 드네요/ 내 투정 다 들어주고도 가슴 가득 안아 재워줄 수 있는 사람/ 자신도 힘들면서 세상에서 묻어온 온갖 절망 깨끗이 씻어주는 사람/ 그런 내게 만만한 사람 하나 있었음 참 좋겠다는 생각/ 이렇게 쓰고 보니 내게 만만한 사람이란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겠단 생각 또한 드네요/ 그 만만한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래야 온전히 나를 보일 수 있고 그를 아낄 수 있으니 그러고 보니 만만하다는 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군요/ 이런 만만함이라면 나도 세상에 많은 사람중 적어도 한 사람에겐 만만한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넌 내게 만만한 유일한 사람이야, 라는 말 그 말이 듣고 싶네요  -‘내게 만만한 사람’ 시인 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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