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자연산 표고 채취의 달인 윤치근 선생
<7>자연산 표고 채취의 달인 윤치근 선생
  • 정리 한송학·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3.06.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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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려면 일반농촌 보다는 아예 산골로 해라

▲ 윤치근 선생은 귀농은 산골로 하는게 좋다고 했다. 산골은 이른 봄에는 고로쇠, 봄에는 산나물, 여름에는 약초캐기, 가을에는 사과농사, 늦가을에는 곶감 만들기 등으로 일반 농촌에 비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 많다는게 윤선생의 이야기이다.

유두리 농장을 경영하는 윤치근(61)선생은 자연산 표고버섯 채취의 달인이다. 다른 자연산 약초도 많이 캐지만 윤 선생이 가장 자신 있는 약초는 표고버섯이다. 자연산 표고버섯은 맛있는 식품이기도 하지만 항암효과가 좋아서 지속적으로 먹으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즈음은 자연산 표고버섯을 찾는 사람이 많다.
표고버섯은 봄과 가을에 채취하는 것이 좋다는 게 윤선생의 지론이다. 윤 선생은 여름 표고도 있지만 역시 표고는 봄과 가을에 채취해야 제대로 된 것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윤 선생은 평생 표고를 캤다. 어릴 때는 한번 산에 가면 몇 부대씩 캐곤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캐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 비해서 윤 선생은 표고버섯에 관한한 자신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 선생을 보고 표고버섯 귀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윤 선생은 잠간 객지생활을 한 것을 빼고는 평생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서 살고 있다. 유평리는 지리산에서도 오지에 있다는 대원사에서 산으로 3km나 더 올라가야 나오는 오지마을이다. 지금은 자동차가 집 앞까지 오는 시대가 됐지만 윤 선생이 어릴 때는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덕산 장에 가는데도 꼬박 이틀이 걸릴 정도로 오지중의 오지였다. 어릴 때는 마을에 왔다 갔다, 하는 지리산 빨치산을 보고 살았을 정도로 유평리는 지리산의 하늘아래 첫 동네이다.
예전에는 약초꾼과 화전민만 살았던 이 마을이 그러나 요즈음에는 사과농사로 부자마을이 됐다. 또 계곡이 좋아 여름에는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이다. 유평리를 감아 흐르는 유평계곡은 지리산 계곡중에서도 가장 길다. 30리에 이르는 유평계곡(요즈음은 대원사 계곡으로 불린다)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가 남한 제일의 탁족처(濯足處)로 꼽았을 정도로 너럭바위와 계곡물이 좋다.
이 마을이 사과로 유명해진 것은 고지대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해발이 700~800m이다 보니 고랭지 사과로 일반 사과에 비해 당도가 다르다. 그래서 유평에서 수확되는 사과는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윤 선생도 사과농사를 하는 데 모두 수확되기가 바쁘게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윤치근 선생의 자택은 바로 유평계곡에 있었다. 집이 바로 계곡에 이어져 있다. 윤 선생 자택에도 사과과수원이 있다. 윤 선생은 사과농사로 연 2천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고 했다. 윤 선생 뒤뜰에는 약초꾼 집답게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세 그루나 있었다. 윤 선생 집을 찾는 일반 사람들은 그 나무가 유명한 약초나무인 느릅나무인지 모른다고 했다. 윤 선생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수령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또 뒤뜰에는 큰 야생 뽕나무가 있었다. 마침 열매인 오디가 열릴 때라 자그만 오디가 수없이 열려있었다. 윤 선생이 한번 따 먹어 보라고 했다. 그런데 달기가 재배오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았다. 야생 뽕나무 옆에는 또 제법 큰 항암효과가 좋다는 야생 구지뽕나무도 있었다. 윤 선생은 언제 이 나무가 여기서 자라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야생 구지뽕 나무는 막 열매가 맺히고 있었다.
윤 선생이 보물창고라고 부르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마가목을 비롯하여 지리산에서 채취한 것들이 가득했다. 요즈음도 자연산 마가목이 있냐고 물었더니 수십 년 전에 지리산에서 손가락만 한 것을 가져와 동네에 심었는데 지금 엄청 큰 나무가 됐다고 했다. 그 나무에서 마가목 약재를 만든다고 했다. 또 야생 당귀도 보였다. 야생당귀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래도 윤 선생은 아직은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보물창고에는 겨우살이도 제법 있었다. 겨우살이는 성삼재 근처에 가면 요즈음도 가끔 보인다고 했다. 윤 선생은 이렇게 냉동보관을 했다가 필요한 사람이 전화를 주면 택배를 하거나 산청에서 열리는 약초축제기간에 나가 판다고 했다. 자연산약초는 파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가 되면 꼭 필요한 사람이 찾아오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게 평생 약초꾼의 경험이다.       
/편집자 주

▲ 윤 선생은 자연산 표고는 큰 태풍이 오고 난 뒤에 따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큰 태풍이 와서 표고가 자라는 부러진 참나무를 뒤집어 놓으면 표고가 하얗게 올라온다고 했다. 사진은 윤 선생이 뒷 뜰의 산뽕나무에서 오디를 채취하는 모습.

아버지 따라 유평리에 들어와 평생을 살아

윤치근(61)선생은 원래 함안에서 태어났다. 4살 때인 56년도에 아버지를 따라 유평리에 들어와 잠시 객지생활을 한 것을 빼고는 지금까지 유평리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대원사 목수일을 하러 왔다가 여기에 정착했다.
윤 선생이 어릴 때는 아직도 빨치산이 있을 때였다. 그래서 밤에는 자주 빨치산들이 마을에 내려오기도 했다. 그만큼 유평리는 산골이었다. 당시에 유평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약초 캐는 일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윤 선생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약초를 캤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약초가 많아서 인근 산에 가도 많은 양을 캘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약초가 없어졌다. 숲이 우거지면서 대부분의 약초가 사라져서 그렇다.
“오히려 그때가 수입이 더 좋았어요. 그때는 아이들이 약초를 캐 동네 어른들께 가져다 주면 제법 용돈을 벌었어요. 그때는 더덕 같은 약초는 몇 부대를 캐곤 했어요. 하루에 가져오지 못해서 다시 심어두었다가 가져오곤 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약초가 없어요. 사람들의 남획보다는 숲이 우거지다 보니 약초가 자라지 못해서 그래요.
윤 선생은 지금은 약초 캐는 일과 함께 약초를 재배하고 있다. 윤 선생이 재배하는 약초는 더덕, 당귀, 천궁, 작약, 도라지, 헛개나무 등 여러 종류이다. 윤 선생은 수요가 많은 약초를 주로 재배한다. 희귀하지만 수요가 적은 것은 재배하지 않는다. 언제 팔릴지 알 수 없어서 그렇다.

▲ 유평계곡 모습. 대원사 계곡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30리에 이른다. 지리산에서 가장 긴 계곡이다. 나의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선생이 유평계곡을 남한제일의 탁족처(濯足處)라고 말할 정도로 물과 계곡과 너럭바위가 좋다.
약초 재배와 자연산 채취를 병행해

윤선생은 약초를 재배하면서 틈틈이 약초를 캐러 산에 올라간다. 요즈음 가장 많이 캐 오는 것은 표고버섯이다. 요즈음 표고버섯은 항암효과가 밝혀져 인기가 좋다. 그런데 표고버섯도 예전만큼은 못하다는 게 윤선생의 이야기이다.
“표고는 바람이 불고 난 뒤에 올라가야 해여. 특히 큰비가 오고 태풍이 불고나면 표고가 많이 나요. 표고는 참나무가 한번 뒤집어 져야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큰 태풍이 오고나면 예전에는 몇 자루씩 따오고 그랬어요.” 윤 선생이 채취해 온 자연산 표고라면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향이 재배한 표고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조금 떼서 먹어보았더니 윤 선생 집을 떠날 때까지 향이 입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윤 선생은 지금도 표고는 매년 적지 않게 채취를 한다고 했다. 보통 산에 갈 때는 새벽 4시에 출발해서 해가 져야 산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평생을 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디에 가면 표고가 많이 나는지 장소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표고버섯이 나는 장소는 자식이라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게 윤선생의 지론이다.

▲ 윤 선생이 재배하고 있는 9년생 도라지. 세 번 옮겨 심어서 만든 것이다. 도라지는 한자리에 놔두면 썩어버리기 때문에 3년마다 옮겨 심어야 한다. 처음 열 뿌리가 세 번 옮겨 심으면서 3뿌리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표고버섯은 큰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많이 나와

표고는 여름은 별로이고 봄과 가을 표고가 약이 된다고 했다. “표고는 가을표고이지요. 가을 표고가 향도 좋고 품질이 우수합니다. 자연산 표고는 재배한 표고와는 향이 비교가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음식에 넣을 때는 너무 많이 넣으면 오히려 음식을 버립니다.” 윤 선생은 자연산 표고는 향이 강해서 음식을 할 때 너무 많이 넣으면 강한 향으로 인해 음식을 버릴 수가 있다고 했다.
윤 선생은 자연산 표고가 필요한 사람이 미리 주문을 하면 산에서 채취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윤 선생은 지리산에서 표고가 나는 곳을 잘 알고 있다.

윤선생의 일 년은 바쁘게 지나간다. 이른 봄에는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고 여름에는 주로 약초를 채취한다. 가을에는 사과와 곶감농사를 하기 때문에 일년 내내 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일 년에 1억 소득은 너끈히 올린다.

▲ 윤 선생이 재배하고 있는 천궁. 천궁은 혈관을 넓히고 피를 맑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산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일이 많아

윤 선생은 요즈음은 소득으로만 치면 산골이 도시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도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약초꾼이 될 수는 없겠지만 산골에는 철마다 일이 있어서 한가할 틈이 없다고 했다.
귀농은 산골로 해라. 산골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냥 보내는 시간이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윤 선생은 귀농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산골로 들어오는 것이 살기에는 더 좋다고 했다.
“귀농을 하려고 하면 일반 농촌 보다는 유평 같은 아예 산골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대책이예요. 어느 정도의 자금이 있어서 계곡에 펜션 하나 지어놓으면 일단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됩니다. 여름에는 방이 없어서 난리가 날 정도입니다. 여름 한철 장사로도 아껴 쓰면 먹는 문제는 해결되어요.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이른 봄에는 고로쇠, 봄에는 산나물, 가을에는 사과수확, 겨울에는 곶감 생산 등을 하면 늙어죽을 때까지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곶감도 2만개 정도 만들면 2천만 원의 소득은 올립니다. 부부 2명이서 만들면 2만개는 금방 만들어요. 그다음은 자연이 다 해 줍니다.”
윤 선생 말대로 아예 산골로 귀농을 하는 것이 소득에는 더 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윤선생이 재배하고 있는 세발당귀. 우리가 보통 채소로 먹는 당귀는 일당귀라 하여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다. 세발당귀는 우리 토종 당귀로 지리산에서 야생으로 많이 자랐다. 참당귀라고도 한다.
더덕, 도라지, 천궁, 방풍, 골담초 등 약초를 재배

윤 선생도 약초를 재배한다. 지리산에서 채취하는 것만으로는 약초 수요를 충당할 수 없어 1500평의 밭에다 약초를 재배하고 있다. 윤 선생이 재배하는 약초는 도라지를 비롯하여 더덕, 천궁, 세발당귀, 방풍, 골담초 등 십여 가지가 넘는다.
윤 선생은 비록 이들이 재배한 약초이지만 자연환경이 자연상태와 비슷해 약효과 좋아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특히 당귀는 윤 선생이 자신 있는 약초인데 자신의 밭에서 재배한 것이나 자신이 지리산에서 채취해 온 것이나 향 등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했다.
“설사 약효가 차이가 있다 해도 이제 지리산에서 이만큼 약초를 구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남획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숲이 우거져서 약초가 자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약초꾼들은 큰 불이 나야 약초가 되지...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정도로 숲이 우거지면 햇빛을 보기 어려워 약초가 자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약초를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어요.”
윤선생도 처음에는 약초를 재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산을 다녀도 약초를 구할 수가 없어서 그때 부터는 약초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15년 전 부터이다.
“비록 재배한 것이지만 약을 치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 새가 먹고 씨를 떨어뜨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풀을 매는 것 외에는 사람손이 거의 가지 않습니다.”
윤 선생은 약초를 재배하는 데 있어서 거의 사람 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윤치근 선생의 산삼 캔 이야기◆

▲ 윤선생이 재배하고 있는 방풍. 방풍은 이름 그대로 중풍을 방지하는 약초다. 요즈음은 채소로도 많이 먹는다.
지리산 약초꾼은 산삼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다

윤치근 선생은 지금까지 약초꾼을 하면서 산삼은 딱 한번 캤다. 40여 년 전에 한 뿌리를 캤는데 억지로 팔아 버렸다고 했다.
“그때 마산MBC에 다니던 총무부장이 우리 유평리에 자주 왔어요. 우리 골짝에 자주 와서는 도인들 하고도 잘 어울리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하고도 잘 지냈지요. 그런데 제가 산에가서 삼을 하나 캐가지고 오니 그 이야기를 듣고 마침 그 부장이 왔어요. 삼을 보더니 산삼이 맞기는 맡는데 정확하게 알려면 감정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감정을 해 볼테니 삼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친하고 하니 그냥 줬지요.”
윤 선생은 마산 MBC에 다니는 지인이 그 삼을 달라고 해서 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장이 부산에 가서 감정을 했더니 동삼이라는 판정이 나왔다는 것.
“총무부장이 부산에 있는 한의원에 가져 갔더니 동삼이라는 판정이 나온 거예요. 그런데 그 부장이 판정이 나오자 돌려주지 않는 거에요. 어느날 부인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와서는 저한테 절을 하는 거예요. 산삼 캔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해야 한다며 절을 하고는 당시 돈으로 5만원을 내 놓는 겁니다. 꼭 쓸데가 있으니 자기한테 달라고 하면서...한복을 입고 와서 절까지 하면서 달라고 하는 데 안 줄 수도 없고...그래서 줘 버렸지요. 당시 5만원이면 정말 큰 돈입니다.”
그 이후 윤 선생은 산삼과는 특별히 인연이 없다고 했다. 보통 약초꾼들은 산삼을 그리 귀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산삼은 치료제가 아니기 때문에 약초꾼들이 일부러 산삼을 캐러 가지는 않는다. 특별히 인연이 있어서 산삼을 캐는 경우가 있지만 특히 지리산 약초꾼들은 산삼에 대해 그리 집착하지는 않는다. 윤 선생도 굳이 산삼을 캐러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산삼에 그리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윤 선생은 지금도 그 산삼 캔 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 산삼이 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 한 번도 그 장소에는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리산 반달곰과 싸운 이야기◆

▲ 윤선생이 재배하고 있는 하수오. 머리가 검어진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약초이다.
사과농사 많이 하기 때문에 곰들이 자주 출몰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들이 요즈음은 인가 주위에 자주 와서 농작물에 피해를 끼친다. 윤선생은 특히 유평리에는 사과농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곰들이 자주 출몰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곰과 싸운 이야기를 해 줬다.
“보통 곰은 계곡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없으면 사과를 따 먹습니다. 얼마나 잘 따먹는지 몇 그루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요. 지난 가을 저녁인데 집에 오니 계곡에 숨어있던 곰이 제가 없는 틈을 타서 사과를 먹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와도 도망가지도 않고 계속 사과를 먹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곰과 싸울 수도 없고 해서 지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지요. 그랬더니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마취 총을 준비해서 온 것이예요. 그런데 국립공원 사람들이 와도 도망을 가지 않고 고무총을 맞고서야 도망갔어요. 고무총을 쏘면 보통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데 이 곰은 마취가 되지 않고 고무총을 맞고서 계곡을 건너 도망갔어요. 나중에 함양까지 갔다고 해요. 방사된 곰은 목에 전자장치가 부착돼 있어서 어디 있는 지 알 수 있어요. 마취 총을 맞고도 함양까지 간 거예요.”
방사된 곰들이 이제 커서 이렇게 마취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도망을 갈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과 잘 못 부딪히다가는 다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곰이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서로 간에 공격을 하다보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곰이 오면 개들은 꼼짝도 못한다는 것. 지난번 곰이 왔을 때 윤 선생 집에 있는 개들이 짖지도 못하고 개 집안에 틀여 박혀 나오지를 못했다고 했다. 아마도 동물들끼리는 서로 간에 위계질서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곰이 오니까 개들이 꼼짝도 못하고 개집 안으로 도망을 가버리는 것을 보고 윤선생도 놀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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