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지리산약초 대동여지도 만든 성환길 박사
<1>지리산약초 대동여지도 만든 성환길 박사
  • 정리 한송학·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3.06.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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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생하는 약초 975종 학계에 보고

▲ 성환길 국제대 석좌교수는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2000번이 넘게 지리산을 답사하여 지리산 약초에 대한 체계적인 보고서를 만들었다. 성 박사는 지리산의 약초가 975종임을 처음으로 밝혔고 흰 칡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리산 중산리에서 자생한다는 것을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다.

성환길(73)한국국제대 석좌교수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에 비견될 만하다. 성 박사는 40년이 넘게 지리산을 2000여회 이상 답사해 지리산약초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성 박사의 독자적인 기록들이 많다. 이 같은 기록은 성 박사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만들어지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학계의 입장이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이다.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될 정도로 산에 관한한 최고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1억3천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정상인 천왕봉은 1915m로 한라산에 이어 남한 2위의 높이이다. 그러나 지리산은 한라산과는 달리 1000m 이상이 되는 봉우리가 20개가 넘는다. 이에따라 지리산에는 난대에서 한 대에 이르는 다양한 기후가 분포한다. 또 밀림에서 초지에 이를 정도로 지형도 다양하다. 이뿐 아니라 흙으로 구성된 산이라서 토질이 비옥하다. 이런 조건은 지리산이 약초의 보고로 자리매김 하게 했다. 
지리산의 풍부하고 다양한 약초는 개업 약사로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던 성환길 박사로 하여금 평생을 지리산의 약초를 연구하게 만들었다. 성 박사는 40년 넘게 지리산 골짝 골짝을 직접 탐방하여 지리산 약초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낸 것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골짝들 중에서 성 박사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 곳이 없을 정도로 성 박사는 평생을 초인적인 노력으로 지리산의 약초를 탐방했다. 김정호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녀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듯이 성 박사는 지리산 구석구석을 탐방해 약초에 대한 보고서를 낸 것이다.
이러한 평생의 노력으로 성 박사가 지리산 약초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우선 지리산에 975종의 약용식물이 산다는 것을 고증해 발표했다. 지금까지 지리산에 약초가 몇 종류가  되는 지 사람마다 달랐다. 1500종이라는 사람, 1000종이라는 사람,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성 박사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고증으로 975종을 학계에 보고했다. 성 박사의 고증으로 지리산의 약초는 975종임이 확인된 것이다.
성 박사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도 많다. 삼지구엽초를 비롯하여 흰 칡 등 성 박사가 직접 확인하여 학계에 보고한 약초가 10종류이다. 
성 박사는 질병과 약초와의 관계를 36종류를 나눠 분류했다. 질병과 그에 효과가 있는 지리산의 약초를 36개의 질병으로 나눠 분류한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어느 약초가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성 박사는 이를 단지 기존의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하나하나 성분을 분석하여 이렇게 분류한 것이다. 1977년 경남생약연구소를 만들어 직접 분석해 나가고 있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성 박사가 개인차원에서 한 일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환길 박사가 이렇게 지리산의 약초를 발견하고 분류해 내긴 했지만 정작 성 박사자신이 약초로 약을 제조해 팔지는 않는다. 지리산 약초에 대한 무한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 지리산에 다니면서 많은 민간요법전문가들을 만났지만 그가 이런 전통의약을 모아서 치료법을 개발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성 박사는 기본적으로 양약을 공부한 약사이다. 그래서 약사로서 또는 생약학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의약이나 한의학을 연구하는 것 보다는 약초를 연구하고 그 약초의 약성을 연구하는 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이런 점에서 성 박사는 자칫 약초의 효과를 맹신하기도 하는 전통의약을 취급하는 사람과는 다른 면이 있다. 성 박사가 분류하고 연구한 지리산의 약초는 생약의 시대를 맞아 앞으로 수많은 약품 생산에 기초적인 연구가 될 것이란 게 생약학계의 전망이다.                                                                

▲ 성환길 국제대 석좌교수는 지리산의 약초와 관련해 평생 23권의 책을 집필했다. 또 중앙대약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을 비롯해 50여 편의 논문과 특허 5건을 받았다. 성 교수는 지리산 약초에 관한한 최고의 학자이자 연구가이다. 이런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성박사는 73세의 나이에도 불구, 현재 한국국제대 제약공학과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신경통 관절염 약 지으려다 약초에 관심 갖게 돼

성환길 박사는 1964년 부산대 약대를 졸업하고 진주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당시 진주의 중앙통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로타리에 중앙약국이라는 상호로 약국을 열었다. 그런데 64년은 진주에 병원이 그리 많지 않을 시기였다. 그래서 약사가 종합병원 의사만큼 모든 병에 대한 상담을 해야 하는 시대였다.
“당시에는 약사가 종합병원 의사와 같았어요. 아프다고 오는 환자에게 병원에 가서 진단해 보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또 당시는 의약분업이 되지 않아 약사가 처방을 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은 복잡한 병원보다는 약국에서 상담하기를 좋아했었지요.”
성 박사가 약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환자들의 성화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당시에는 신경통 환자가 그렇게 많았다. 그런데 당시는 신경통에 주는 약이 진통제 밖에 없었다. 진통제는 잠시 동안 처방은 돼도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는 약이다. 그래서 성 박사는 신경통에 잘 듣는 약이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직 현대적 의료체계가 갖추어지기 전이어서 병원, 약국의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신경통 환자가 그렇게 많았습니다. 진주는 도농 복합지구이다 보니 농사일을 하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경통 약은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였구요. 그래서 진통제만 줄 수는 없어서 이것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요.”
성 박사는 신경통, 관절염 때문에 약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 박사가 눈여겨 본 것은 약초 중 골담초였다. 골담초는 어릴 때부터 뼈에 좋다고 들어왔다. 또 문헌을 찾아보니 관절염이나 신경통에 좋다고 돼 있었다. 그래서 골담초를 기본으로 해서 우슬 등 몇 가지 약초를 넣어서 약을 지어 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잘 낫는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골담초에다가 몇 가지 약초를 섞어서 약을 만들어 주었더니 잘 낫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약초란게 그냥 볼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중앙대학 약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골담초를 이용한 신경통 관절염 치료약을 연구했지요.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약은 지금은 개발돼 있습니다.”

▲ 민둥인가목꽃. 성환길 교수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약초연구하다가 대학원 진학해 약학박사 받아

성 박사는 자신이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 바로 신경통 약을 연구하다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성 박사는 중앙대학 약대에 진학해 7년간의 연구 끝에 골담초로 신경통약 만드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 박사 하면 ‘골담초 연구자’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성 박사의 메일아이디도 골담초이다.
이렇게 골담초에 집중한 성 박사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지리산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리산은 진주인근에 있고 또 약초의 산으로 오래전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그랬다. 골담초가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 뻔한 성 박사의 인생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간 것이다.

▲ 민둥인가목열매. 성환길 교수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약초 자생지

지리산은 진주에서 약 40km 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리산이 진주현에 속해있던 시절도 있다. 지금은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은 행정적으로 산청군에 속해 있다. 지리산은 1억3천만 평에 이르는 광대한 산이다. 정상인 천왕봉을 비롯하여 반야봉, 노고단, 칠선봉, 토끼봉 등 1000m 이상인 봉우리가 20여개나 된다. 지리산은 워낙 높고 넓어 지리산 안에 난대, 온대, 한온대, 한 대림 등이 있다. 또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명산이 바위산인데 비해 지리산은 토산이다. 흙산이어서 나무와 풀이 자라기에 좋은 비옥한 토질을 가지고 있다. 지리산은 옛날부터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고 있다.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으로 부르는 데는 이처럼 지리산이 흙산이어서 나무와 풀이 많고 산이 거칠지 않아서 그렇다. 
“지리산의 정상 부근은 1915m로 한대 기후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두산에 자라는 약초가 지리산의 고산지대에서 발견됩니다. 또 지리산은 토산입니다. 설악산 등의 산이 바위산인데 비해 지리산은 토산입니다. 그래서 토질이 비옥해 약초가 자라기에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리산은 워낙 넓어서 그 안에 초원지대도 있고 밀림 지대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생태환경이 다양한 약초를 낳게 된 것 같습니다.”

▲ 삼지구엽초. 성환길 교수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허준 선생 산음에 온 것은 지리산 약초 때문

성 박사는 지리산이 약초의 보고가 된 것은 지리산의 기후와 토질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허준 선생이 산음에서 활동했다는 것이 문헌에 나옵니다. 산음은 현재의 지명으로 산청군 생초면에 해당합니다. 생초면 주변에 왕산이 있고 동의보감촌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촌은 산청군이 세계 엑스포를 개최하는 주 무대입니다. 이렇게 허준 선생이 산음에서 활동한 것이 그냥 우연히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우수한 약초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허준 선생이 좋은 약초를 찾아서 지리산 즉, 산음으로 온 것이지요.”
성 박사는 허준 선생이 산청에 온 것이 지리산의 약초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지리산행으로 인해 성 박사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성 박사는 원래 등산을 좋아하지도 사진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지리산에 다니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약초 사진을 찍는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약초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만 성 박사가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지리산을 처음 다닐 때만 해도 약초자료가 전무했다. 약초에 대해서는 구전되는 것이 전부이고 실제 사진이나 기록물이 없었다. 그래서 약초를 연구하는 것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 개느삼. 성환길 교수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약초 연구하려다 약초사진 전문가가 돼

성 박사는 처음에는 약초사진을 찍는 것이 자신의 연구를 위한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랬다. 그런데 대부분의 약초가 아름다운 꽃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약초에 있다. 대부분의 약초는 야생화이기 때문에 그 모양이나 꽃이 청초하다. 성 박사는 연구를 위해 시작한 약초사진 찍기가 취미이자 특기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전국에서 저만큼 약초사진을 보유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40년간 약초사진을 찍어 왔으니 그 분량이 방대하지요. 지금은 디지털사진기가 있어서 찍어 와서 컴퓨터에 저장하면 되지만 슬라이드도 없을때에는 찍어온 사진을 보관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지리산 약초를 연구하고 기록하기 위해 찍었던 사진으로 그는 뜻하지 않게 사진작가의 반열에 들었다. 그가 찍은 지리산의 약초사진은 광동제약이 15년 동안 달력으로 만들었고 매년 25만부를 찍어 자신들의 거래처 약국과 병원 일반인들에게 배포했다.
“광동제약이 제 약초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매년 배포했기 때문에 약국과 병원 등에서는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때부터 저는 약초연구가 보다는 약초사진가가 된 셈이지요. 약초 사진보유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저를 따라올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지금도 성 박사의 지리산 약초 사진은  산청군청과 공공 장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성 박사의 사진은 전문가 이상이다. 성 박사는 자신의 사진작품으로 대통령상을 받아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 연령초. 성환길 교수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약초사진으로 대통령상 받아 해외연수도

“제물포 예술제라는 것이 있었어요. 10회까지 하다가 중단됐는데 제가 2회째인 84년도에 사진을 출품해 대통령 상을 받았어요. 대통령 상을 받으니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과 점심을 먹는 거예요. 그때는 전두환 대통령 시대였는데 전 대통령과 악수도 했지요. 그런데 그때는 해외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인데 대통령 상을 받은 사람은 해외연수를 보내줬어요. 그래서 한 달간이나 해외에 놀러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성 박사는 자신이 찍은 지리산의 약초사진을 모아두었으면 큰 트럭으로 한 트럭은 됐을 거라고 했다. 지금은 디지털 사진기가 나와서 편리하지만 처음 약초 사진을 찍을 때는 엄청 힘이 들었다. 흑백사진과 칼라사진은 오래 보관하지 못해 자료사진으로 만들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슬라이드로 만들어 보존하곤 했는데 그것도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요즈음은 디지털 사진이 나와서 그런 문제는 해결됐다.
이렇게 사진기를 들고서 지리산을 다닌 게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성과도 많았다. 지리산의 약초를 975종으로 분류해 학계에 보고한 것은 성 박사의 최대 연구업적이다.
“지금까지 지리산 약초가 몇 종이나 되는지는 소문으로만 전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지리산의 약초를 분류하기 시작했지요. 이를 위해 고문헌이나 약초 책을 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지요. 모르는 것은 식물전문가에게 묻기도 하면서 정리해 나갔어요. 그랬더니 975종이 나오는 거예요. 아직까지는 제 연구를 뒤집는 연구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약초식물은 975종이라는 것이 학계의 공식입장입니다. 제가 발표한 것이지요.”

▲ 자주톱풀꽃. 성환길 교수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지리산의 자생 약초 975종 학계에 보고

성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깨어지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깨기 위해서는 자신만큼 사진기를 들고 지리산을 다녀야 하는 데 요즈음 그렇게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것. 실제 성 박사의 연구는 현장을 다녀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성 박사의 연구는 독자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리산 약초의 연구는 주로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보다 일본에서 지리산 약초는 더 알아주고 있는 것. 제일 먼저 지리산 약초를 분류한 사람은 1915년 일제 강점기 때 나까이 박사이다. 나까이 박사는 지리산에 470종의 약용식물이 살고 있다고 보고했다. 다음에는 1934년 일본인 하쯔시마씨가 621종의 식물을 보고하였으며 1961년에 오카모토박사와 오위박사가 공동 조사하여 846종의 지리산 식물을 보고한 바 있다. 성 박사의 연구는 이들 연구보다 훨씬 진전된 것이다.
성 박사는 이외에도 지리산에서 우리나라에 없다는 약초 10가지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흰 칡이다. 흰 칡은 꽃이 흰 칡을 말한다. 보통 칡은 보랏빛 꽃이 핀다. 흰 칡은 변이종이다. 흰 칡이 식물학계에서 보고된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발견된 게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 흰 칡을 성 박사가 지리산 중산리에서 발견을 한 것이다. 흰 칡은 아직 성 박사가 발견한 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다. 이 흰 칡은 보호조치가 취해져 현재 보호 중이다.

흰 칡등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 10종류

성 박사는 흰 칡을 발견한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 우리나라에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 박사가 발견한 것은 이외에도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 이북에 자생하는 삼지구엽초도 있다. 삼지구엽초는 지리산이 위치한 남부지역에서는 자랄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성  박사는 지리산의 고산지대 기후가 삼지구엽초의 생존을 가능케 한 것 같다고 했다. 또 공해가 없는 지역에서만 자라는 송라도 발견했다. 송라는 소나무 겨우살이를 말한다. 성 박사가 항암제 성분이 있다고 분류한 약초이다.
그 외 연령초, 개느삼, 자주톱풀, 민둥인가목, 월귤나무 등이 성 박사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한 약초들이다.
성 박사는 또 지리산의 약초와 질병과의 관계를 연구하여 모두 36개의 질병과 그에 효과가 있는 약초를 분류했다.
성 박사는 지리산의 약초 중 암에 효과가 있는 약초는 모두 33종으로 분류했다. 성 박사가 약성을 분석해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으로는 바위솔, 구지뽕나무,  화살나무, 주목, 참느릅나무, 집신나물, 산미역취, 애기똥풀, 마타리, 뱀딸기, 활나물, 씀바귀, 금은화, 겨우살리, 영지버섯, 표고버섯, 그룸버섯, 바위손, 개미취, 율무, 쥐방울, 천문동, 홀아비꽃대, 꿀풀, 지치, 황련, 하눌타리, 질경이, 개미취, 상황버섯, 둥글레, 속새, 어성초 등이다.
또 당뇨병을 치료하는 약성이 있는 약초는 모두 22종이다. 이들 약초로는 주목, 두릅나무, 흰칡, 수리취, 맥문동, 둥굴레, 다래나무, 화살나무, 찔레나무, 칡, 황벽나무, 구기자, 메꽃, 새삼, 현삼, 하눌타리, 황기, 지황, 두릅나무, 율무, 인삼, 옥수수 등이다.
고혈압을 치료하는 약초는 모두 24종이다. 꿀풀, 털진득찰, 진득찰, 천마, 겨우살이, 누리장나무, 메꽃, 산국, 감국, 돌감, 흰칡, 가는참나물, 두충나무, 뽕나무, 구기자, 현삼, 좁쌀풀, 왜떡쑥, 도고마리, 산사자, 방기, 깽깽이풀, 미나리 등이다.

질병36가지를 분류해 이 질병들에 잘 낫는 약초 연결

이처럼 성환길 박사는 인간에게 생기기 쉬운 36개의 질병을 분류하고 그 질병에 효과가 있는 약초들을 연결시킨 것이다.
성 박사는 40년간의 지리산 약초 연구를 통해 모두 23권의 책을 펴냈다. 주로 사진을 찍다 보니 아무래도 책을 펴 내기가 쉬웠다. 그래서 책이 많아졌다. 성 박사의 저술활동으로 지리산의 약초가 많이 알려졌다.
또 지리산의 약초의 약성을 분석하여 펴 낸 논문이 50여 편에 달한다. 지리산의 약초 전도사라 할 만 하다. 이와함께 지리산의 약초연구로 받은 특허도 5건이나 된다.
이렇게 평생을 지리산의 약초를 연구했지만 정작 성 박사 자신은 약초를 잘 먹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특별히 약초를 먹어야 될 만큼 건강이 나빠진 적이 없다는 게 성 박사의 이야기.

생약연구로는 약초의 기능을 다 알 수 없다

성 박사는 생약학자로 자신은 약초의 성분을 분석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고 했다. 그런데 약초는 성분분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 많아 사실은 고민이라고 했다.
“산삼을 아무리 성분분석을 해도 우리가 흔히 구할 수 있는 인삼과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 오래된 더덕을 캐 보면 더덕의 머리 부분에 물이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 뿌리 캤는데 가져와서 성분분석을 해 보면 특별한 것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그게 더덕 내부에서 생긴 것인지 빗물이 고여서 그리 된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것을 먹고 건강해졌다는 사람은 여럿 보았거든요.”
성 박사는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생약성분 분석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아직 규명이 안 되는 성분도 있고 규명이 된다 하더라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과학적으로 다 설명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성 박사의 주장이다.
지리산의 약초만 해도 그렇다. 지리산의 약초가 약재상들은 약효가 뛰어나다고 하지만 재배한 약초와 성분분석을 해 보면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생약학으로 지리산 약초의 효능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지리산의 약초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다른 지역의 약초와 약효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이야기한다.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무시하기가 어렵다. 성 박사는 이런일을 겪을 때마다 생약학자로서 한계를 절감한다고 했다. 성 박사는 그래도 과학을 무시할 수 없기때문에 자신은 약초의 성분분석이 가장 근본적인 연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 박사는 본격적으로 약초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1977년 경남 생약연구소를 설립했다. 자신의 개인 연구소이다. 성 박사는 자신은 여러 가지 한계가 많아 약초를 분류하고 약성을 분석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 약초가 전망이 밝다고 했다.

1977년 경남생약연구소 설립

“세계적인 추세가 약초에서 약을 개발하는 게 붐입니다. 화학약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약용식물에서 항생물질, 항암물질, 심장병, 당뇨병 등을 치료하는 약이 많이 개발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 년에 처방이 850억  원이 넘는 스티렌이라는 약이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D제약이 개발한 위궤양 치료제입니다. 그런데 이 약은 쑥이 원료입니다.”
성 박사는 이외에도 생약의 원조는 아스피린이라고 했다. 아스피린은 원래 버드나무에서 뽑아낸 약성으로 만든 약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가 아파서 돌돌 구르면 버드나무 삶아서 마시면 대번에 나았습니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지요. 그 버드나무가 바로 아스피린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성 박사는 이외에도 주목의 잎에서 택솔을 분리해 내 난소암이나 자궁암을 치료하는 치료제를 개발한 것 등 이미 약초에서 약을 개발하는 것이 대세라고 했다. 암치료에 있어서도 방사선 치료 등은 일반 세포와 암세포를 동시에 죽이기 때문에 약초에서 항암제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가장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약초에서 생약 제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

성 박사는 자신의 약초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의 버섯은 항암효과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 버섯을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버섯은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항암세포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 성 박사는 특히 상황버섯, 영지버섯, 차가버섯, 표고버섯, 송이버섯 등이 항암효과가 높다고 했다. 성 박사는 면역력만 높여줘도 암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 박사 자신은 현대의학을 배운 사람이지만 현대의학으로 포기한 사람들이 전통의약을 통해 낫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했다.
성 박사는 자신은 현대학문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현대의학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전통의약이나 민간요법으로 해결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고 했다. 현대의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 성 박사는 따라서 지리산 인근의 이러한 민간요법이나 전통의약에서 현대의학이 배울 것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사라져 가고 있는 민간요법이나 전통의약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우리나라 의학발전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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