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추억
과거로의 추억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0.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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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교수

 
가끔 내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사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슬럼프에 빠질 때, 이유 없는 우울증에 시달릴 때면 “무슨 인생이 이렇게 재미없을까” 싶어 두 어깨에 힘을 쪽 빼고 다닌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 하나, 내게 있어 가장 큰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상자 하나를 열어보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편지 상자이다. 어릴 적부터 받아온 편지들을 모아둔 것으로 읽을 때마다 내게 힘을 주기에 항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비 내리는 날, 시간이 넉넉해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읽을 때면 세심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감수성 예민한 친구들의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곤 하는데 내가 보낸 편지 또한 그랬으리라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지곤 한다.
특히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고 있다 보면 예전의 향수와 추억에 잠겨 한참 동안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 편지를 모아 두었던 것이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온 삶의 기록이 편지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몇 년 전 이 편지 상자를 이사하는 도중에 잃어버렸다. 양이 많아서 큰 쇼핑백에 담아 끈으로 묶어두었는데 엄마가 버리는 것인 줄 알고 버렸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돌아와 방 정리를 하면서 그것만 안보여 물어보니 날벼락 같은 대답만 들려올 뿐 찾을 수는 없었다.
그 때의 내 심정은 차마 설명할 길이 없다.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편지를 내 실수로 인해 한낱 쓰레기로 처분해 버렸으니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슬픔이 있었으니, 그건 다시는 시간을 되돌려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읽으면 그 때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아 그 때는 그랬었지, 맞아, 그 일로 마음이 상했었어,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과거를 추억하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 일은 불가능해졌다. 새록새록 다 생각나던 일들도 하나도 생각나질 않았고, 나를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던 친구들의 격려 편지도 이젠 다시는 읽을 수 없게 되었다. 퀴퀴한 종이냄새, 색 바랜 볼펜색깔, 70원 짜리 우표에 찍힌 소인이 더없이 정답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몇 백통의 편지를 잃어버린 지금, 내겐 몇 십 통의 편지만이 남아있다. 그 이후에 받은 편지들인데 솔직히 20대 때 주고받은 편지만큼 소중하게 생각되질 않는다. 그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추억할 수는 있었던 것은 그 편지들 때문이었기에 지금도 나는 그 편지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힘이 들 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오래된 친구의 편지를 펼쳐 읽는 것도 괜찮은 한 방법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불어 이동통신의 발달과 함께 편지를 쓰거나 하는 일은 낡고 지루한 일처럼 생각되는 신세대에게 편지를 한 번쯤 써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화로 방금 한 말은 주워 담을 수도없고, 지나간 과거의 회상에 큰 어려움이 있지만 편지는 아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큰 의미와 인생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에 일회성인 전화에만 매달리지 말고 편지를 주고받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편지 쓰기에도 딱 좋은 계절이 우리들 앞에 서 있으니 이 또한 삶의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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